사상최대의 퇴직으로 생긴 뭉칫돈은 어디로 흘러 갔을까.

돈에 꼬리표가 달려있지 않으니 정확한 추적은 어렵다.

하지만 금융상품과 증시동향 등을 보면 그 흔적을 유추할 수 있다.

갑자기 생긴데다 덩치가 큰 돈이어서 다른 자금보다 비교적 선연한 족적을
남겼다.

퇴직금은 크게 네번째의 변신을 하는 중이다.

"은행고금리상품->단기상품->주식.창업자금->주택분양.소비"로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상반기까지는 은행 등의 고금리상품에 숨죽인 채 묻혀 있었다.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한 작년 하반기 들어선 갈 곳을 찾지 못한채 급속히
단기부동화됐다.

작년말부터는 주식과 창업 등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이동했다.

최근들어선 아파트 분양과 소비로 몰리는 경향이다.

<> 작년 상반기까지는 은행에 묻혀 있었다 =작년에 퇴직자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1~2월.

경제전반이 얼어붙어 있던 때였다.

갈 곳 없는 퇴직금의 95%는 곧바로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해 한국은행으로
되돌아 왔다.

더군다나 IMF직후여서 금리가 연 30%에 육박했었다.

작년 1월중 은행 정기예금은 9조9천4백50억원 늘었다.

2월엔 10조3천18억원이 증가했다.

은행 신종적립신탁도 1월 한달동안 17조9천1백82억원이나 늘었다.

물론 이 돈이 모두 퇴직금은 아니다.

그러나 "매달 이자를 받거나(정기예금), 고금리 상품(신종적립신탁)이란
점에서 퇴직금의 대부분이 이들 상품에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서종한
서울은행 자금부부부장)

<> 작년 하반기부터 단기부동화하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숨죽이고 있던
퇴직금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 7월부터다.

금리가 내리기 시작한 게 가장 큰 동인이다.

여기에다 작년 6월29일 5개 은행이 퇴출당하면서 추가로 쏟아진 퇴직금도
새로운 변수가 됐다.

그렇다고 퇴직금이 새로운 둥지를 찾지는 못했다.

일단 새로운 투자에 대비, 단기상품에 맡겨 놓자는 심리가 팽배했다.

투신사의 단기공사채형 수익증권이 퇴직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했다.

단기공사채형은 작년 6월엔 1천6백78억원 증가하는데 불과했다.

그러나 7월과 8월엔 각각 13조2천7백44억원과 16조22억원이 늘어났다.

반면 작년 상반기에 돌풍을 일으켰던 신종적립신탁은 첫 만기가 된 7월에
3조1천2백8억원 줄었다.

6월까지 매달 평균 7조원이상 불어나던 정기예금도 7월과 8월엔 4~5조원
으로 증가폭이 둔화됐다.

이런 현상은 10월까지 계속됐다.

작년 9월에도 은행과 기업에서 퇴직자가 대거 쏟아졌다.

"당시 퇴직자들의 포트폴리오는 연초와는 달랐다. 매달 이자가 지급되는
정기예금엔 최소자금만 예치했다. 나머지는 단기상품에 넣어둔 뒤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유재성 현대투자신탁증권 부장)

<> 올들어서는 움직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단기화돼 있던 퇴직금이
본격적으로 제갈길을 찾아나선 것은 작년말부터다.

금리가 한자릿수로 떨어지면서 퇴직자들에겐 비상이 걸렸다.

이자 가지고 사는 데 이자가 반토막으로 줄어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퇴직원금을 까먹을 수는 없으니 다른 대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점에 증시에 불이 붙었다.

퇴직금은 증시로 "헤쳐모여"를 시작했다.

분수령은 작년 12월이다.

은행 정기예금은 한달동안 9천74억원이나 줄었다.

투신사 단기공사채형도 5조8천3백49억원 빠졌다.

대신 주식형수익증권은 4천22억원 증가했다.

증권사 고객예탁금도 6천2백38억원 불었다.

물론 연말결산을 앞둔 기업과 금융기관이 일시적으로 자금용도를 조절한
영향이 컸지만 퇴직금 대이동의 영향도 상당했다.

퇴직금 이동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지난 4월이다.

4월 한달동안 주식형 수익증권은 6조1천3억원이나 늘었다.

반면 은행정기예금은 1조5천8백37억원 줄었다.

1년만기 은행정기예금에 들어갔던 퇴직금중 상당액이 만기가 되자 주식으로
이동했다는 반증이다.

"동료 퇴직자들을 볼 때 현재 주식에 대한 직간접 투자비중이 30% 가량은
된다. 보수적인 은행 퇴직자들이 이렇다면 기업퇴직자들의 주식투자비중은
더 높을 것이다"(송지만 H은행 퇴직자)

올들어 또 다른 변수가 된게 퇴직금 중간정산이다.

은행과 기업이 중간정산을 실시하면서 퇴직금은 경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간정산을 받은 사람들은 특히 직장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주식과
부동산에 과감히 돈을 투자하는 모습이다.

증시와 함게 창업자금으로 동원되는 기미도 역력하다.

퇴직한 지 1년이 지난 마당에 더 이상 놀수 없다는 심리가 팽배한 탓이다.

실제로 작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7대도시에서 매달 평균 2천1백92개의
회사가 신설됐다.

작년엔 월평균 신설법인이 1천6백6개였다.

특히 올 3월에는 지난 93년이후 가장 많은 2천5백72개사가 새로 문을
열었다.

"작년 하반기 이후 창업한 소규모 점포주들은 대부분 명퇴자라고 볼 수
있다"(강형문 한국은행 정책기획국장)

<> 최근엔 소비와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 =요즘 수도권에 새로 짓는
중형아파트는 없어서 못팔 정도다.

대형에도 장사진이다.

작년말 10만2천7백가구까지 늘어났던 전국의 미분양아파트는 올 4월말엔
8만4천5백38가구로 즐어들었다.

수도권에선 같은 기간 미분양주택이 2만7천4백81가구에서 2만2천26가구로
감소했다.

실수요자도 많겠지만 차익을 노리는 투자가들이 적지 않은게 틀림없다.

주식에서 재미를 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소비로 가는 자금을 추적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도시근로자 가계의 경우 근로소득이 줄어든 반면 퇴직금 등 비경상
소득은 늘었다는게 통계청의 해석이다.

월급이 줄어드는 데도 소비가 늘어났으니 퇴직금이 소비로 가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증시에서 한번 튀겨진 자금이라면 더더욱 소비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퇴직금이 움직임 유추 ]

< 98년 상반기 >

<> 변수 : . 고금리 계속
. 신종적립신탁 시판
. 대규모 희망퇴직
. 기업부도 급증
<> 움직임 : 은행 정기예금 신종적립신탁으로 유입(상반기중 정기예금
46조5천6백억원, 신종신탁 24조8천억원 증가)
<> 경기영향 : 퇴직금 대부분 환수(경기영향 별로 없었음)

< 98년 하반기 >

<> 변수 : . 금리 하락세로 반전
. 은행 퇴출
. 실물경기 최악
. 부도 주춤
<> 움직임 : 새 투자처 모색하기 위한 단기 자금화(하반기중 단기공사채형
48조4천억원 증가, 정기예금 20조5천억원 증가)
<> 경기영향 : . 증시자극 시작
. 소규모 창업 시작
. 분위기 호전

< 98년말 이후 ~ 현재 >

<> 변수 : . 금리 한자릿수 시대
. 실물경기 회복 조짐
. 증시 활황
. 퇴직금 중간정산 증가
<> 움직임 : 증권시장으로 집중 유입(올들어 4월까지 주식형 수익증권
10조1천억원, 고객예탁금 5조1천억원 증가)
주택 등 부동산시장 유입
창업 본격화
소비자금화
<> 경기영향 : . 주가 급등
. 소비증가세 반전
. 주택분양 활기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