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이 욕심 많고 약간 순진한 부자에게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이야기는 재미있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종의 사기극이다.

있지도 않은 "강물 취수권"을 만들어 팔았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계에서도 전혀 엉뚱한 권리를 팔아 돈을 버는 봉이 김선달들이
있다.

현실의 김선달과 다른 점은 이들의 거래를 "사기"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취급품목은 인터넷 홈페이지나 E메일 개설에 필요한 주소다.

이들은 심지어 남의 나라 이름까지 팔아먹는다.

홈페이지 주소는 일정한 체계에 따라 영문으로 표기된다.

이를 "도메인 네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하는 이름 다음에 관공서(go), 또는 기업(co) 학교(ac)
연구소(re) 등을 뜻하는 약호와 나라이름(kr)이 이어진다.

미국은 국가 이름 없이 관공서는 gov, 기업은 com 등으로 표기한다.

"ABC"라는 이름의 기업이 인터넷에 기업 및 상품홍보와 전자거래 인력채용
등을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할 때 누구나 쉽게 알아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주소에 "ABC"라는 이름을 넣으려 할 것이다.

한국 기업이라면 "abc.co.kr"이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 이름을 먼저 등록해 버렸다면 그 기업은 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주소는 먼저 등록한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이름을 사용하거나 먼저 등록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실제 주요 기업의 이름을 먼저 등록해 놓고 해당기업에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

인터넷 주소를 두고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자 UN 산하의 세계지식재산권기구
(WIPO)는 이런 행위를 못하도록 규약을 마련해 올해 9월에 발표할 예정
이라고도 한다.

사이버 세계 봉이 김선달들의 기발한 "사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 이름 약어를 교묘하게 이용해 파는 것이다.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남태평양의 소국 통가라는 나라의 약어인 "to"이다.

관광업체의 경우 "travel.to/korea"라고 하면 "한국으로 관광오라"는 뜻의
훌륭한 이름이 된다.

어느 김선달은 통가 정부에서 "to"로 끝나는 이름들을 대량으로 사들여
원하는 사람들에게 되팔아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통가뿐이 아니다.

아르메니아의 "am"은 라디오 방송국, 코코스 아일랜드의 "cc"는 골프장
주소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이런 사례들이 의미하는건 무엇인가.

사이버 세계의 영토는 "선점자 우선원칙"에 따라 먼저 깃발을 꽂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이다.

비옥한 땅이냐 황무지냐 하는 것이 거의 선착순으로 결정된다.

홈페이지 주소는 상징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이미 개설돼 인기를 끄는 사이버 쇼핑몰이 있다면 나중에 이를
젖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방문자들은 대개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이트에 책갈피(북마크)를 해 두고
계속 이용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엔진 "야후"의 성공도 다른 검색엔진들보다 먼저 나왔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인터넷 주소를 확보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이버
세계의 영토를 선점해야 한다.

요즘은 워드프로세서 작업하듯이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소프트웨어도 있고
값싸게 웹서버를 빌려주는 업체도 많다.

정부는 금년 하반기부터 개인들에게도 독자적인 홈페이지 주소를 허용
하기로 했다.

국민 모두가 사이버 세계에 집을 짓고 능력에 따라 학교 백화점 병원
방송국도 건설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 arira@mic.g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