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마케팅" 시대가 열렸다.

대기업 총수들이 마케팅 최전선에 직접 나서 스스로 "PR맨"을 자처하고
나선 것.

외부에 노출되기를 꺼리던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총수가 움직이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기 마련.

회사의 이미지나 매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요즘 "걸어다니는 광고판"으로 불리운다.

그룹의 대소사에 그의 얼굴이 빠지는 경우는 없다.

계열사의 매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판촉 사원"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8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에쿠스 신차발표회에
참석했다.

그의 "감각"은 행사가 끝난뒤 나타났다.

자신의 다이너스티 리무진을 팽개친채 행사 참가자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에쿠스를 타고 퇴근해버린 것.

"에쿠스=정주영이 타는 최고급 승용차"라는 등식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신차발표회에서는 계약을 받지 않기로 했지만 성화에 못이겨 받은 계약이
50대를 넘는다.

정 명예회장의 판촉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현대건설의 김포 장기리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방문했다.

모델하우스를 찾은 고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그는 직접 제비뽑기를 해
금강산티켓을 고객들에게 나눠줬다.

그가 다녀간뒤 이 아파트 청약률은 평균 70%에서 90%로 뛰어올랐다.

이는 전체 1천7백44가구 가운데 3백50가구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당장 7백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게다가 모델하우스 방문객 숫자도 하루 평균 2천~3천명 늘었다.

그는 현대증권 바이코리아펀드가 탄생하자 곧 10억원을 가입했다.

바이코리아펀드는 지난 27일 판매액이 4조원을 돌파했다.

다른 총수들도 마케팅 선봉장이다.

지난 27일 LG전자의 한국형 디지털TV 발표회에는 구본무 LG 회장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월례 사장단회의 직후 구 회장이 나서자 그룹 사장단도 모두 따라 나섰다.

디지털TV는 앞으로 LG전자를 먹여살릴 핵심 차세대제품.

신문과 TV에 그의 모습이 디지털TV와 함께 나오면서 고객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는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김우중 대우 회장도 지난달 누비라II 신차발표회에 나와 밀려드는 고객들과
빠짐없이 악수하며 판촉활동을 펼쳤다.

누비라II 는 현재 준중형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다.

금융권도 마찬가지.

송달호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대표적이다.

송 행장은 최근 기업분석가와 펀드매니저들을 상대로 기업설명회를 열었다.

그가 내건 경영방침은 "주주가치 극대화".

고객 중심, 투명 경영으로 주주의 이익을 실현시킬테니 주식을 사달라는
것이었다.

김정태 주택은행장 역시 작년 8월 취임 이후 여러차례에 걸쳐 이같은
기업설명회를 열었다.

그는 특히 외국 투자자들을 적극 공략해 취임 당시 25%에 그쳤던 외국인
지분이 최근에는 60%까지 올라갔다.

주가도 취임 당시 4천원이었던게 지금은 3만1천원대로 치솟았다.

8개월만에 8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총수의 "일거수 일투족"은 고객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직접 "PR맨"으로 나서는 것 만큼 훌륭한 홍보 방법은
없다"며 "총수가 멋들어지게 해낸 홍보효과는 수백억원 규모의 광고효과와
맞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