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합이 채권은행단에 의한 "강제 외부 수혈" 방식으로 회생의 길을 걷게
됐다.

고합의 실질적 주주인 채권은행단이 23일 가진 회의에서 내린 결정이다.

채권은행단은 이날 장치혁 회장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외부 전문가
를 새 대표이사(CEO)로 선임해 고합의 장래를 맡기기로 했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조건이었던 외자유치가 부진했다는 책임으로
"채찍"을 든 셈이다.

물론 채찍만 휘두르진 않았다.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당근"도 주기로 했다.

출자전환 규모를 늘려주고 대출금 금리도 낮추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고합으로선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자금흐름을 유리하게 돌려 놓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부채를 그대로 남겨둘 경우 회생이 불가능 하다는 판단에서 채무를
재조정해 주기로 했다"는게 채권은행단 설명이다.


<>외자유치가 관건 =업계는 그러나 이번 조치가 고합의 완전 회생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비용 부담은 경감됐을 뿐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업황도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주력제품인 화학섬유 원료 PTA(고순도 테레프탈 산)가 그렇다.

동남아 경제위기로 중국과 동남아 지역으로의 화섬 수출이 줄어들자 국내외
화섬업체들도 PTA 수요를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

가격도 회복 추세긴 하나 더 올라줘야 수익성이 개선된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외자유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추진돼 온 외자유치가 성공해야 고합의 회생도
빨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종합화학 전문회사로 =이번 채무조정과 관계없이 고합그룹이 그동안
추진해 온 구조조정은 지속될 전망이다.

그룹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자구차원에서 진행돼 온 것인 만큼 경영진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합은 그동안 합병 매각 등의 방식으로 계열사 13개 가운데 10개를 이미
정리했다.

다음달엔 고려종합화학을 (주)고합에 합병한다.

서울할부금융과 고합뉴욕생명보험은 외자유치를 위해 역시 매각이 추진중
이다.

따라서 외자유치가 제대로 될 경우를 상정한다면 (주)고합 한회사만 남게
되는 셈이다.

"고합 단일회사로 남아 섬유부문에 특화된 회사로서 생존을 모색하게 된다"
는게 그릅측 설명이다.


<>장회장의 역할 =경영일선 퇴진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이어진 "섬유그룹의
신화"도 막을 내릴 전망이다.

장 회장은 지난 66년 자본금 1천만원으로 고려합섬을 설립한 뒤 섬유산업
호황을 등에 업고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종합화학 전문그룹"을 꿈꾸며 울산공장 1,2단지를 건설했으나 자금난을
견뎌내지 못했다.

장 회장은 앞으로 외자유치 등을 포함한 대외업무나 경영자문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 남북경협위원장 등의 직함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다.

"협력경영"을 강조해온 만큼 경영 노하우를 새 CEO에 전수해 줄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어떤 형태로든 외자유치를 해내겠다는 게 장 회장의 결심"
이라고 말했다.

< 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