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일수록 브랜드를 감춰라(?)"

최근 고가 수입브랜드들 사이에 로고를 작게 쓰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단순한 스타일로 디자인을 바꾸는 기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제품에 따라서는 로고를 아예 쓰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얼굴 노릇을 해왔던 심벌을 없애는 명품 브랜드도 적지않다.

드러내지 않고도 은근히 부를 과시하려는 상류층 고객들의 소비심리에 맞춰
튀지 않으면서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안티스테이터스(Anti-status)심벌"
전략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상품이 비쌀수록,또 명품이라는 자부심이 높을수록 이같은 경향은 더욱 더
강하다.

한때 브랜드 로고로 제품 전면을 장식했던 디자인이나 번쩍이는 금장식의
심벌 등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로고 플레이가 화려해야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중저가 캐주얼웨어 시장의
마케팅 공식과는 상반되는 현상이다.

상품 겉면에서 가장 이름을 찾기 어려운 브랜드가 프랑스의 에르메스다.

이 브랜드의 대표적 제품인 "켈리 백"은 백의 앞 뒤 어디에도 에르메스라는
브랜드명이 쓰여있지 않다.

다른 가죽 가방도 마찬가지다.

손지갑 등 몇몇 상품의 경우에만 "HERMES"라는 글자를 아주 작고 희미하게
새겨놓았을 뿐이다.

샤넬도 두개의 C자를 엮어놓은 모양의 고유 심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샤넬 코리아 홍보실의 허산주 실장은 "얼마전 이 심벌 자체가 모티브로
쓰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C자로 가득 찬 의류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최근에
선보인 신상품들에서 이 심벌을 찾기란 무척 힘들다"고 털어놨다.

홍보용 제작물이나 매장 인테리어에는 아직도 이 표식을 사용하지만
제품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는게 허실장의 설명이다.

프라다의 "로고 리뉴얼"도 유명하다.

프라다는 1년전부터 전통적인 역삼각형의 엠브로이드보다는 "PRADA"라고
쓰여진 사각형 검은색 라벨을 제품에 더 자주 활용하고 있다.

또 패션계의 화제로 떠오른 스포츠 라인에는 검은색 대신 빨간색 라벨을
붙이는등 눈에 안띄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서서히 브랜드의 얼굴을 바꾸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처럼 명품브랜드들이 로고 리뉴얼을 단행하는 이유로
뉴밀레니엄을 앞두고 그동안 정체돼 있던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존의 로고나 심벌은 오랜 세월동안 쌓여진 브랜드의 영예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구태의연한 인상을 심어줄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날이 갈수록 카피상품의 수가 늘어나고 복제기술이 교묘해지는 것도
그 이유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루이비통 프라다처럼 로고가 독특한 상품일수록 가짜상품이 많다는 소문은
패션가에서 더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또 카피상품이 늘어나자 오히려 티나지 않는 "안티스테이터스 심벌"로
차별화된 만족을 얻으려는 것이 고가진품을 사는 고객들의 숨겨진 또다른
속내다.

에르메스코리아의 조성민 지사장은 "자신의 지위와 개성에 진정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은 값은 비싸도 겉으로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명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즉 안티스테이터스 심볼에는 상류층만의 자신감과 여유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 설현정 기자 so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