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공식 활동이 부쩍 늘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19일 경기도 김포시 장기리의 현대건설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방문한데 이어 29일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 들러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정 명예회장의 화성공장 방문에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박세용
현대상선 회장,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등이 수행했다.

정명예회장은 이날 "기아자동차를 지금보다 2배이상 키워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 상상을 초월하는 좋은 회사로 만들 것"이라며 기아 정상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정몽구 회장은 이에대해 "기아차의 생산설비를 증설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생산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정 명예회장은 김수중 기아자동차 사장의 브리핑을 들은 뒤 기아의 최고급
승용차 엔터프라이즈를 배경으로 공장 근로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열심히
일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기아차 화성공장 방문을 끝낸 뒤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과
함께 헬기를 이용해 곧바로 서산농장으로 향했다.

정 명예회장의 잇단 현장 방문은 북한 방문 때나 그룹의 굵직한 대외 행사에
간간히 얼굴을 내밀던 것과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현대는 "정 명예회장이 그룹의 사업현장을 둘러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밝혔으나 언론에 미리 통보해 언론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29일 기아자동차 방문 행사에는 60여명의 기자들이 정 명예회장 주변에
몰려들어 취재경쟁을 벌였을 정도다.

재계는 이같은 정 명예회장 행보의 의미를 두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주력사업 육성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건설은 그룹의 모기업.

건설을 빠뜨리고는 현대그룹을 생각할 수 없다.

자동차는 그룹의 최대 사업이다.

매출규모가 20조원 규모에 이른다.

두 회사의 성장이 곧 그룹의 성장과 직결된다는게 정 명예회장의 판단인
셈이다.

현대건설은 국내외 건설시장의 침체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고 현대자동차
역시 기아를 조기에 정상화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은 상태다.

정 명예회장이 사업장을 방문한 이유다.

그룹 내.외부에 이 사업에 대한 확고부동한 육성 의지를 내보여 보다 깊은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 두 사업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 명예회장은 현대증권이 판매하는 바이코리아펀드에 10억원을
가입했다.

급성장하고 있는 현대증권의 사업에 가속도를 붙여보자는 생각인 셈이다.

현대전자가 협상을 마무리해 LG반도체를 인수하면 그곳도 반드시 방문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자동차 건설 전자 중화학 금융.서비스 등 5개 핵심사업이 확고한 발판을
구축할 때까지 명예회장의 역할은 반드시 하겠다는 의미다.

후계체제 구축작업이 마무리됐다는 것을 공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세영 명예회장의 분가로 현대 2세 체제의 윤곽은 드러났다.

자동차부문은 사실상 장남인 정몽구 회장에게 돌아갔다.

5남인 정몽헌 회장은 전자부문과 건설부문은 5남인 정몽헌 회장 체제로
굳어졌다.

반면 3남인 정몽근 금강개발산업 회장과 7남인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고문은
올들어 분가를 마쳤다.

8남인 정몽일 현대종합금융 회장도 분가가 멀지 않아 보인다.

6남인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은 이 회사 대주주이긴 하나 정계에 몸을 담고
있다.

정몽구 회장과 자동차공장에, 정몽헌 회장과 건설현장에 함께 모습을 내보인
것은 이들 두 회장에게 현대의 앞날을 맡긴다는 뜻이라는게 재계의 분석이다.

MK(정몽구 회장의 영문 이니셜)-MH(정몽헌 회장의 영문 이니셜) 쌍두체제의
완성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그룹은 서서히 분할된다.

"나 이후 그룹 회장은 없다"고 누차 강조하던 정 명예회장의 구상이 이제
구체화된 셈이다.

< 화성(경기)=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