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멈추면 안된다.

경기가 막 살아나려고 하는데 주저앉을 수 없다.

실업자가 양산되고 신규산업을 일으킬 만한 여력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우리에겐 갖고 있는 공장을 최대한 돌리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멈추면 IMF 관리체제 탈출은 물거품이 된다.

그런데 조짐이 이상하다.

임.단협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노사분규가 벌어지고 있다.

파업으로 생산현장이 움츠러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해를 넘기면서 대상업체
노조와 "비대위"등이 "연대 투쟁"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3월까지 이어지면 "춘투"와 맞물려 산업계 전체가 분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은 5일 가동을 중단했다.

5t 이상 트럭용 유압브레이크를 공급하던 한국브레이크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이날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간데 따른 여파다.

기아자동차 노조도 이날 찬반 투표를 거쳐 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고용보장과 체불임금지급을 요구하며 파업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여기다 현대자동차 노조도 기아 노조와의 통합을 선언하고 연대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뿐만 아니다.

"빅딜" 대상업체들은 "빅딜 반대"을 외치는 한편 "위로금"과 "장려금"을
달라며 생산라인을 버려두고 있다.

명예퇴직 조건으로 60개월치 월급을 요구하니 회사로선 들어줄 방법이 없다.

노조는 빅딜이 된다해도 5~7년 고용보장을 안해 주면 농성을 풀 수 없다고
주장한다.

LG반도체나 삼성자동차 대우전자 모두가 똑같은 주장이다.

현대 삼성 대우 LG 등 한국을 대표하는 4대그룹이 벌써부터 분규에 휘말려
있는 셈이다.

물론 빅딜 대상업체 직원들과 노동계의 주장도 이해할 수는 있다.

임금이 깎이고 고용이 불안해지면 다소 과격한 행동도 하게 마련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주변 여건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
은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주체들이 지난 1년여간 뼈를 깍는 고통을 참아내며 쌓은 "위기 탈출
기반"을 물거품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사실 주변 상황은 작년에는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개선됐다.

지난달 외국인 투자는 1백30건, 9억6천7백만달러로 1월중 투자액으론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말 정책협의 때만 해도 "99년 2% 성장"에 대해 지나치게 장미빛이라며
비아냥대던 IMF도 최근 2% 이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손을 들었다.

가용외환보유고도 사상 최대인 5백억달러를 넘어섰다.

한때 30%를 웃돌던 금리도 한자리수로 내려와 기업자금 사정이 크게
좋아졌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건 이제 국제적인 상식이 됐다.

영국의 피치IBCA와 미국의 S&P 등 평가기관들은 신용등급 상향조정으로
한국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런 "성과"를 노사분규는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S&P도 "한국이 추가로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선 노사분규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을 돌며 열리고 있는 전경련
한국경제 로드쇼에서도 외국인들은 노사분규 여부가 한국경제의 IMF 탈출
시기를 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란 지적을 빠뜨리지 않았다.

외국인들의 "고견"을 들어볼 일도 없다.

노사문제가 있는 기업은 신용도 잃고 돈도 잃는다.

외자유치는 생각도 못한다.

대우전자 LG반도체 삼성자동차 등 3사의 분규로 인한 손해가 이미 5천억원
이 넘었다는 계산도 있다.

노동계도 달라진 패러다임에 익숙해져야 한다.

국민들은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는 집단이기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IMF 체제하에서 정부도 노조와 협상할 여지가 거의 없다.

특히 빅딜 관련 업체들은 파트너가 있기 때문에 오너라고 하더라도 노조의
주장을 들어줄 권한도 능력도 없다.

공장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지금으로선 부인할 수 없는 당위이고 선이다.

< 김정호 기자 jhkim@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