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세계무역기구)가 한.미 반도체 분쟁에서 한국 손을 들어줬다.

한국이 통상분쟁에서 국제기구의 해결절차를 통해 이긴 것은 이번이 처음
이다.

특히 대미통상문제에 관한한 대개 수세로 일관해온 한국으로선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상대가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무리한 정책에 대해선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볼 수있다.

이번 판정은 반덤핑조치를 남발해온 미국의 통상정책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철강 등 다른 한국상품의 대미수출은 물론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나라들의 대미수출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분쟁경위 =지난 92년 미국의 반도체회사인 마이크론은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D램을 미국에 덤핑수출을 하고 있다고 상무성에 조사를 신청했다.

상무성의 조사절차를 거쳐 지난 93년 4월에 LG와 현대전자는 덤핑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3차례나 계속 심사를 받았지만 덤핑혐의가 아예 없거나
무시할 정도라는 "미소판정"을 받았다.

이 경우 미국은 반덤핑혐의를 철회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한국이) 장래에
덤핑할 가능성이 없다"는 확실한 정황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정부는 지난해 8월14일 세계무역기구에 미국을 제소했고 이번에
결론이 나온 것이다.

<> 판정의 주요내용 =WTO는 "장래에 덤핑할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는 미국
상무성의 반덤핑판정 규정은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이를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의 덤핑혐의를 입증할 책임도 전적으로 미국측에 있다고 해석했다.

WTO는 반덤핑조치 자체를 철회하도록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 통상법령이 도마에 오른 것만으로도 미국으로선 낭패를 당한
셈이다.

<> 미국이 어떻게 나올까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WTO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반덤핑을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이 WTO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문제의 상무성 조문을 빼 버리거나
수정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보다는 이번 판정에 승복하지않고 상소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 한국이 얻은 소득 =그동안 미국은 한국산 반도체에 대해 덤핑혐의를
풀지않았을 뿐 대미수출에 대한 직접 규제조치를 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번 승소로 당장 대미수출이 늘어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판정은 한.통상이슈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반도체뿐만아니라 철강 등 무려 14개 수출상품이 미국의 수입규제에
걸려 있다.

<> 전망 =미국은 상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상소판결이 지금과 같을 경우
어쩔수 없이 관련조항을 고쳐야 한다.

이 경우에도 덤핑혐의를 푼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국내업계는 일이 자연스럽게 풀리기를 희망한다.

미국의 호황이 계속되고 반도체 수입수요가 계속 늘어나게 되면 덤핑시비가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번 분쟁이 내년 11월까지 끌게될 경우엔 일몰재심도 기대해 볼만하다.

이는 미국측이 반덤핑판정을 내린후 5년간 상황을 지켜본후 다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분쟁 자체가 끝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 이동우 기자 lee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