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6일 오후 과천 청사 재정경제부 장관실.

이곳에 오랫만에 시중은행장들이 얼굴을 비쳤다.

조흥은행 위성복행장과 외환은행 홍세표 행장이 잇달아 이규성 재경부장관을
방문한 것.

물론 이 장관의 "면담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 장관은 "9월말까지 합병등 경영정상화 계획을 조속히 마무리 지으라"고
재촉할 요량으로 불렀지만 두 은행장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간곡히 부탁하고
돌아갔다.

시중은행장들이 재경부 장관실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은 금융구조조정이
시작된 이후 이례적인 일이다.

사실 그동안 금융감독위원회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행장들이 요즘
들어선 재경부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구조조정의 무게 중심이 재경부로 옮겨지고 있어서다.

퇴출은행 선정과 같은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절차는 금감위 소관이었다.

하지만 정리은행이 결정되고 나서 이제부터 본격화 될 재정지원은 재경부
권한사항이다.

은행들 입장에선 재경부에 매달리기 시작해야할 때다.

실제로도 재경부는 최근 금융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금감위가 앞장서 칼을 휘두르고 재경부는 한발 뒤에서
지켜보는 모양새였다.

때문에 금융계에선 "재경부는 지는 해,금감위는 뜨는 해"라는 말도 있었다.

재경부 스스로도 부실은행 퇴출이나 은행합병과정 등에서 터져 나오는
현안들에 대해 표면적으론 "오불관언"이란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금융구조조정이 재정지원 단계에 들어선 만큼 몸짓을 바삐하며 자기 목소리
도 분명히 내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은행이 반드시 합병을 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등 금융구조조정 이슈들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동안은 "금감위 소관이니 금감위원장에게 물어보라"고 회피하던 것들
이었다.

이에 대해 "금융구조조정의 칼자루가 드디어 금감위에서 재경부로 넘어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일부에선 "그동안도 금감위는 앞장만 섰을 뿐 실질적으론 재경부가
막후에서 조정을 했었다"며 "단지 그 역할이 공식화되는 것일뿐"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재정지원이란 "권한"을 들고 재경부가 다시 뜨고 있는 것에 대해
금융계에선 과거 재정경제원 시절 금융정책실의 막강 파워가 부활하는게
아니며 벌써부터 입방아를 찧고 있다.

< 차병석 기자 chab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