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망하는구나. 주위에서 쓰러지는 것을 많이 봤지만 내 차례까지
올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돈은 다 어디가 있는건지..."

경기도에서 골판지상자를 만드는 S사 김영철사장(가명.60)의 출근길 독백
이다.

머리속이 돈생각으로 가득찼으니 눈발처럼 흩날리는 벚꽃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리 없다.

오늘 돌아오는 어음 1억8천만원을 막기 위해 며칠째 뜬눈으로 밤을 샌
상태다.

아침 8시쯤 회사에서 기자를 만난 김사장의 모습은 초췌함이 역력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자금담당상무 관리부장 경리과장을 불렀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어제도 은행에 가봤는데 대출이 곤란하다고 합니다"

"보증기관에선 뭐라던가"

"첨단업종이 아니어서 추가 보증이 어렵답니다"

"뾰족한 수가 없을까"

"사장님께서 직접 은행과 보증기관을 방문하셔서 사정을 해보시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은 경리과장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주거래은행은 본사가 서울에 있을때부터 10여년째 거래해온 K은행.

종업원 30명 연매출 40억원의 작은 규모지만 업계에서 알뜰경영으로 이름난
이 회사가 자금난에 봉착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따른 후유증
때문.

원자재를 공급하는 골판지원단업체들은 환율상승으로 고지수입가격이
올랐다며 1월초부터 원단가격을 50%나 인상했다.

동시에 어음결제기간을 종전 5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게 치명타였다.

납품중단운운에 할수없이 받아들였지만 매월 갚아야 하는 원자재대금이
월평균 2억원에서 이달엔 4억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형납품처인 D사는 로컬신용장 대신 3개월짜리 어음으로
결제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로컬신용장은 네고라도 하지만 어음은 한도가 꽉차 받아도 할인할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중소기업으로서 이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지점장실에 도착한건 오전 10시께.

용건을 꺼냈다.

"2억원만 대출해 주시오"

"추가 담보가 있습니까"

"기존 담보로 더 해주십시오. 시가 20억원짜리 공장으로 그동안 대출받은건
6억원뿐이지 않소"

"그건 곤란합니다. 부동산가격이 떨어져 기존 대출금에 대해서도 오히려
추가 담보를 잡아야 할 판입니다"

다른 업체들은 담보를 가져와도 대출을 해줄수 없는 형편이라고 지점장은
덧붙였다.

그런데도 S사에게 담보조건으로 대출을 해주려는 것은 그동안의 거래를
감안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지점장은 꼭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보증기관의 보증서를 끊어와야 된다고
말했다.

더이상 얘기가 안되겠다고 판단한 김사장은 경기도에 있는 신용보증기관
으로 향했다.

도착한 것은 점심시간이 막 지나서였다.

"2억원짜리 대출보증서 좀 끊어 주시오"

"어제 경리과장에게 말씀드렸다시피 추가 보증이 어렵습니다.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 지난해 매출이 20%나 신장한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설비투자를
많이 해 재무구조가 더 나빠진데다 사장님네 회사는 첨단유망업종이
아니어서 더이상 보증이 곤란합니다"

"골판지상자는 아주 중요한 제품입니다. 이게 없으면 전기 전자제품과
식료품 의류는 뭘로 포장합니까. 또 수출은 어떻게 하고요"

전자 통신만 첨단이면 도금 염색 열처리와 같은 기반산업과 제지 골판지
상자와 같은 산업은 없어져도 좋단 말인가.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축처진 어깨로 회사로 돌아온건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은행에선 어음결제대금을 입금할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전화가 여러통
왔었다.

"관리부장은 돌아왔나"

"예, 그동안 할인하지 못했던 어음 1억원어치중 사채업자에게 2천만원
어치만 할인해 왔습니다. 이자는 월 5부로 선공제하더군요. 나머지는 신용이
없는 업체것이라 할인을 거절당했습니다"

"그 돈이라도 우선 은행에 입금시키시오"

"이미 넣었습니다. 은행에선 미입금분에 대해 오늘 1차부도 처리하고 내일
까지 기다려 본뒤 최종 부도처리하겠다고 합니다"

김사장은 20년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요즘처럼 어려운 적이 없었다.

한눈팔지 않고 경영을 해온 자신이 왜 이지경이 됐는지 납득할수 없었다.

그동안 한 것이라곤 일밖에 없고 번돈은 전부 재투자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자기가 책임지고 해결할테니 절대 동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이른 오후 6시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회사를 나갔다.

이날밤 마지막 수단으로 친척과 친구를 찾아다니며 통사정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를수는 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오로지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질 좋은
제품생산에만 열중했는데 왜 이지경까지 왔는지. 이런 상황에서 과연 죽을
힘을 다해 사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가"

< 김낙훈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