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전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가라앉으면서 각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요즘 우리처럼 특히 인력을 줄여나갔다.

그무렵 일본업계에선 "받이쟁반(수반)"이란 용어가 유행했다.

받이쟁반이란 화분의 밑을 받치는 그릇.

이는 바로 완제품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정리해고자들을 부품업체에
떠맡기는 현상에 비유한 용어다.

화분에 물을 부으면 필요한 물은 화분이 다 빨아먹고 흘러내린 물은
쟁반이 떠맡는다는 뜻이다.

완제품생산업체 즉 화분기업을 일본에선 공식용어로 "모기업"이라고
부른다.

반면 쟁반기업을 수급기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75년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모기업이란
용어를 20년간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용어는 95년 계열화촉진법의 이름이 기업간협력증진법으로
개정되면서 바뀌었다.

모기업은 위탁기업으로, 수급기업은 수탁기업으로 전환됐다.

이름을 이렇게 바꾼 건 그동안 기업간 거래에서 모기업과 수급기업이
지나치게 주종관계였던 점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이제서야 모기업과 수급기업이 용어상으론 동등한 지위를 나타내게
된 셈.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완제품업체의 횡포는 여전하다.

이른바 "새벽시장"만 보더라도 그렇다.

완제품에서 불량이 나왔다고 부품업체사장을 이른 새벽부터 모기업
공장앞으로 나오게 해 정상가격으로 도로 사가도록 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물론 이 전략이 부품업체의 품질을 높이는데 기여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기업은 바뀌지 않으면서 자꾸만 부품기업에 책임을 전가하는게
잘못이다.

업계가 실시하는 100PPM운동도 이면을 한번 살펴보면 놀라운 현상이
발견된다.

이는 처음 제품의 불량률을 1만개중 1개 이하로 줄이자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부품"의 불량률을 1만분의 1로 줄이라고 납품업체에
강요하는 운동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부품업체가 모기업의 검사설비와 검사인력을 떠맡을 수 밖에 없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어음제도도 마찬가지다.

이는 처음 기업간거래 원활화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모기업이 자신의 자금난을 부품업체에 전가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더 심한 건 납품대금 대신 모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떠맡기는 행위.

이런 행위를 하면 처벌하는 규정이 분명히 만들어져 있음에도 개선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다 최근 구조조정 사태를 만나면서 "쟁반받이 현상"이 업계에서
부쩍 느는 추세다.

반도체장비 전자부품등 업종에서 유난히 심하다.

모기업들이 부품의 납품규모에 따라 부장급 1명 또는 과장급 1명에
대리급2명등 물받이 인력을 배당하고 있다는 것.

한 납품업체 사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동안 당한 설움만해도 지긋지긋한데 또 다시 인력까지 모셔가라니
더이상 할말이 없다"라고.

그렇다.

부품업체부터가 먼저 구조조정을 해야 할 판인데 오히려 인력까지
떠맡으라는 건 보통 부담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럴 땐 현명해지는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인력을 모셔와야 된다면 먼저 자신의 회사에 적합한 인력을
선택하자.

모기업의 고급기술인력을 지명하면서 내보내줄 것을 요청하면 어떨까.

그러나 이보다 부품업체로선 이제 받이쟁반이란 인식부터 버리자.

사실 알고보면 "화분"은 물을 먹고 산다.

화분에 물이 마르면 화초는 말라죽는다.

따라서 화분에 물을 주는 기업이 바로 부품업체다.

수동적으로 쟁반노릇을 떠맡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화분에 물을 주는
기업이 되자.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