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가 21일 당지도위원회 결의를 통해 현대와 LG 등의 구조조정계획에
불만을 표시하고 "사업교환(big deal)" 등을 통한 강도높은 개혁을 촉구하자
재계가 당황하고 있다.

새정부의 대기업정책이 예상보다 구체적이어서 요구수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는 또 아직 "허니문"도 시작하기 않은 시점에서 새정부에 "말 안듣는"
이미지를 고착시켜 대기업정책의 강경화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갖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김원길 국민회의정책위의장은 이날 "대기업들이 어물어물 구조조정
을 하다가는 구조조정특별법의 방향과 내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해
대기업의 미지근한 조치에 불쾌해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삼성그룹이 이날 오전 이건희회장의 개인부동산 1천2백80억원어치를 매각
하는 내용을 담은 구조개혁안을 서둘러 발표한 것도 정치권의 이같은 "경고
사인"에 대한 즉각적인 화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삼성보다 이틀먼저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다가 낮은 평가를 받은 현대와 LG는
그래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와 LG는 이에 따라 총수의 재산출연 등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마련중
이다.

현대는 국민회의측이 소유와 경영분리를 목표로한 자사의 경영개선 계획을
높이 평가한데 대해 안도하면서도 대주주의 사재 출연이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지 못하고 있다.

당초 구본무회장 등 지배주주의 사재를 출연, 유상증자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던 LG는 보다 획기적인 ''성의표시''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아직 개혁안을 발표하지 않은 대우그룹과 SK그룹은 정치권과 여론의
기류가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어 정치권에 풍향계를 드리운 채 "원안" 수정
작업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 그룹들도 "도대체 새정부측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며 곤혹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내놓아야 소위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날까지 나타난 발언들을 종합해 볼 때 새정부측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총수의 사재출연" 수준은 아닌 듯 하다.

김원길의장은 <>주력부문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그램
<>노동자를 달래고 국민의 믿음을 얻는 자발적인 성의표시 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팔리지 않을 한계계열사의 정리 보다는 잘
나가는 계열사를 팔겠다는 실현가능한 계획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그룹 관계자는 "새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결국 다각화를 지양하고 일등할
수 있는 한두개 업종만 집중 육성하라는 것"이라며 "그러나 과연 이것이
1,2주 사이에 정해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