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비상경제대책위원회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정부와 비대위는 외채상환교섭을 위한 미국방문일정을 앞당겨 오는 15일께
미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지난해말 만기가된 단기외채들의 만기가 이달말까지 연장돼 있어 하루빨리
해결방안을 확정지어야 하는데다 환율급등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변양호 재경원국제금융과장이 미국 뉴욕에서 수집한 국제금융기관들
의 의견을 토대로 우리측의 카드 를 다듬고 있다.

이번 주말부터 미국측과 밀고 당기는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와 비대위가 나서서 금융기관의 외채상환을 논의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외채 리스케줄링(상환일정재조정)과 다름없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만기연장 조건으로 요구하는 금리가 리보에 10%포인트나 더한 연
16% 수준인데다 제일/서울은행의 외채에 대해서는 차주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등 이행조건도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S&P사가 최근 우리나라의 단기채권의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림으로써 국제금융시장 분위기는
안심할수 없게 돌아가고 있다.

<>금융기관 외채수급 상황=지난 12월20일 기준으로 공식집계된 금융기관의
외채는 장기외채 4백42억과 단기외채 5백46억원 등 모두 9백88억달러.

현재 국제금융기관과의 논의의 핵심인 금융기관의 단기외채 5백46억달러중
외국은행지점의 외채 1백72억달러를 제외한 국내금융기관 외채는 3백74억
달러.

지난 연말 만기연장률이 떨어지면서 외환보유고 등으로 이를 상환해 현재
국내금융기관의 단기외채는 모두 3백억달러 수준에 달한다는게 재경원의
추산이다.

이중 하루짜리 오버나잇 차입금이 50억달러 수준이고 나머지 만기가 7일
에서 6개월물에 이르는 외채가 중장기채로 전환될 대상이다.

이 채권중 1백50억달러에서 2백억달러가량은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채권형태나 대출형태로 연장될 전망이다.

금융기관들이 중장기채권으로 연장해 주는 규모가 얼마냐에 따라 정부가
발행할 국채의 규모 등이 결정된다.

금융기관의 장기외채 5백46억달러중 올해 만기가 되는 채무는 1백10억달러
정도.

이들 장기차입금은 대부분 상환해야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해외금융기관들이 연장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다 운용기간이 확정돼
있기 때문이다.

장기와 단기를 합쳐 금융기관이 갚아야할 채무는 어림잡아 1백60억-
2백10억달러 수준에 달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뉴욕에서 협상되는 것이다.

<>단기외채 연장방법=미국계 은행인 JP모건은 당초 단기채무와 신규자금조성
등 모든 외화차입을 국채발행을 통해 일괄 해결하자고 제안했었다.

이는 투자은행들의 분위기를 주로 반영한 것이었다.

이에대해 씨티은행과 같은 미국계 상업은행이나 일본계및 유럽계는 자체적
으로 만기를 연장하는 한편 신디케이트론(차관단대출)으로 신규자금을 지원
하자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JP모건측이 최근 기준화폐에 엔화나 마르크화도 포함시키고 만기를 1,3,5,
10,20년으로 다양화하며 콜옵션을 삭제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미국계
상업은행들도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채발행은 당초 예정했던 90억달러의 외평채발행으로
국한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아무리 상황이 급하지만 민간의 부채를 국가채무로 바꿈으로써 실질적인
국가부도(모라토리엄) 위험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2백억달러 수준의 정부보증으로 금융기관단기외채를 중장기채무로
전환시키고 만기도 5년이상은 넘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제금융기관들은 제일은행이나 서울은행의 외채는 연장할수 없다고
밝혀 이부분은 정부나 다른 은행의 부담으로 돌아갈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들은 또 금리도 정크본드와 같이 리보에다 10%를 가산한 15-16% 수준의
금리를 요구하고 있어 우리측과 현격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우리측이 얼마만한 협상력을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으나
우리측이 수세적인 입장에 몰려있는 점을 감안할때 국제금융기관들의 요구를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김성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