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1월 중순까지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꾀할 수 있는 노.사.정 합의 도출을 요구하고 있으나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지난 26일 선거법위반으로 검찰에 입건중인 한국노총 박인상
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일부 비판까지 무릅쓰며 그를 초청해
설득작업을 폈으나 시원스런 답변을 얻어내지 못했다.

27일에는 배석범 위원장직무대리 등 민주노총 간부들과 대좌했으나 반응은
더 냉랭했다.

김 당선자는 이날 "법적으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더라도 고용보험 등으로
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겠다"
면서 협조를 요청했다.

김 당선자는 또 "우리 경제현실은 IMF의 협력을 받아 차관을 더 들여오고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단기외채에 대한 상환연장조치가 시급한
만큼 IMF가 요구하는 개혁정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며 급한 사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측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은 임금삭감과 고용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게 된다"며 반대입장
을 분명히 했다.

특히 민주노총측은 내년 2,3월 노동계의 실력행사가능성을 거론하며
"그렇게 되면 김당선자로서도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커진다"고 압박하기까지
했다.

노동계가 첫 여야정권교체를 이룩한 김 당선자의 입지나 경제위기상황을
고려해서 "총파업불사"같은 초강경카드는 꺼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이었다.

김 당선자로서는 한마디로 IMF와 노동계 사이에서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게
됐다.

이 때문인지 김 당선자측은 각오도 그 어느때보다 비장하다.

부실금융기관에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금융산업구조개선법개정안을 회기중
처리되지 않을 경우 "무리수"라는 판단에 따라 폐기했던 대통령긴급명령발동
까지 다시 검토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다.

물론 긴급명령이든 1월 임시국회처리이든 일단 노.사.정 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계가 내걸고 있는 조건들을 과감히 수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김 당선자측은 고용보험확충 재취업대책 등 안전장치와 함께 정부조직개편
을 통한 공무원감원, 대기업소유구조조정 등 정부와 사용자측에 대한 고통
분담조치를 제시함으로써 "왜 우리에게만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느냐"는
노동계의 반발을 어느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노동계 일각에서는 "사와 정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노이상으로 고통을
감수하도록 한다면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까지 노동계가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폭은 극도로 좁다.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은 지난해말 "새벽날치기"를 했다가 혼쭐이 난
전례가 있다.

IMF나 외국금융기관들은 시한을 정해 놓고 처리를 종용하고 있다.

노동계의 실력행사가 우려되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수도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김당선자측은 <>IMF의 요구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불가피성을
홍보,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여야합의로 처리해 정치권의 일치된 견해
임을 강조하고 <>사용자와 정부의 고통분담조치를 강구하는 전략을 구사하되
<>접근방식에서는 현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끈질긴 설득작업"
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어쨌든 정리해고제 문제가 김당선자의 국정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건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