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문제는 결국 제일, 서울은행에 적용됐던 해법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산업은행의 출자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으로 포드에 인수시키기로 한 것은
제일, 서울은행에 대한 정부 지분을 외국은행에 매각하는 방법과 사실상
동일하다.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아직 공개적으로 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시
소액주주및 기존주주들의 이해가 명확히 대립해 있는데다 미국과의 물밑
협상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난처하기 때문이다.

또 3자인수와 관련된 해법속에는 기존주식의 소각등 다양한 갈등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정부는 부실은행및 부실기업 문제와 관련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과
상당한 갈등을 빗어왔다.

제일은행에 대한 정부출자와 기아에 대한 산업은행의 출자가 늦어진 것도
이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협상의 전면에 나서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IMF와 우리정부의 최종 합의는 부실기업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정부의
출자를 인정하지 않되 만일 정부의 출자지분을 외국인을 포함해
공개매각한다면 이는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원칙은 제일 서울은행에 처음 적용됐고 기아에 다시 원용되고
있다.

여기엔 산업은행의 대출금을 출자전환하지 않고는 기아그룹의 거대한
부실채무 정리가 불가능하다는 현실론도 깔려있다.

물론 이경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일, 서울은행은 부실경영에 대한 주주 책임을 물어 기존주식을
소각하기로 했다.

그러나 포드의 기아주식에 대한 처리는 그리 쉽지 않다.

포드는 그동안에도 법정관리로 갔을 경우 자신들의 주식이 소각되는 것에
반대해왔다.

이점이 제일및 서울은행과 기아해법이 갖는 차이점이다.

26일 김진표 재경원 은행보험심의관의 설명은 이런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주주의 경영책임과 관련해 법원의 입장이 바뀌고있다"고 밝혔다.

법정관리가 시작되면 경영에 책임이 있는 기존 대주주들의 주식이
소각하도록 하는 것이 법원의 관례지만 기아의 경우 경영에 책임이 있는
주주를 밝히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만일 포드의 기아주식은 소각하지 않고 다른 주주의 주식만 경영책임을
이유로 모두 소각할 경우 불평등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포드주식을 소각해 버리는 것은 더더욱 곤란한 일이다.

미국이 버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이다.

결국 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출자를 통해 경영권을 넘기는 길밖에 없다.

이미 물밑교섭은 상당히 진행돼 있으며 포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