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정부의 이날 발표로 최근 2개월여동안 국가부도
까지 거론되던 외환위기 상황은 일단 최대의 고비를 넘기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면서 정치와 경제정책에 새로운 중심축이 형성
된데다 IMF와의 합의사항이 비교적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들로서는 한국이 모라토리움을 선언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국제적 파장이 결코 적지 않음을 염려한 것으로 풀이
된다.

국제 대형은행들로서도 채무불이행이냐 상환연장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싯점으로 몰린 것도 마지막 지원에 동참케 한 배경이 됐다.

어떻든 이날 발표는 극심한 외환위기로 공포감에 싸여 있던 한국인들에게는
모처럼의 성탄절 선물도 됐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로서는 앞으로 경제운용
에 한숨을 돌릴수 있는 계기를 확보하게 됐다.

당사측이 외교채널을 최대한 동원해 달러외교에 나선 점, 국회가 23일에
이어 24일까지 금융개혁 관련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한 점 등도 모두 점수를
받게 됐다.

<>배경=IMF는 당초 사상 최대 규모인 5백70억달러의 자금지원 의지를
천명할 경우 한국에 대한 신인도가 상당부분 회복돼 민간금융기관의 자금
상환 요구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낙관했었다.

그러나 부실금융기관 처리에 늑장대응하는 등으로 오히려 국제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게다가 대선기간중에 IMF 재협상 주장이 제기되자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한국은 믿을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무디스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을 급격히 낮추면서 국가부도사태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가
재연됐었다.

IMF와 미국정부는 한국이 대외채무 불이행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경우 일본경제는 물론 국제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할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당선자가 확정되면서 지난 21일엔 나이스국장을, 22일엔 립튼
재무성차관을 긴급 파견했다.

립튼차관은 방한하자마자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를 만나 IMF 협약준수의사를
재확인한뒤 통화 자본시장자유화 금융산업구조조정 환율및 외환보유고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한국으로부터 추가양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립턴 차관의 방한에는 김기환 순회대사 등 관계인사들과 국민회의측의
외교라인이 총동원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망=IMF가 그간 이른바 2차 방어선에 있던 G7국가 등 주요 선진국 자금
2백33억달러중 34%에 달하는 80억달러를 연말까지 조기동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의 금융위기 심화를 결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와관련, 임창열부총리도 발표문에서 한국이 현재의 외환부족사태에서
조기에 벗어나도록 지원하는 것이 세계경제안정을 위해 긴요하다는데 국제적
인 동감대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선진국들이 자국 주요 민간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자제하고 만기연장 등을 통해 자금을 계속 지원하도록 설득하기로
합의한 만큼 이번 조치로 국내 외환수급사정은 결정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가 치른 희생과 양보도 적지 않았다.

외국인주식투자 한도가 연내로 앞당겨졌고 채권시장의 경우 개인별 전체
한도도 폐지됐다.

한마디로 IMF 합의이후 이행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에 내년이후
양보할수 있는 중요한 파이를 미리 내놓고마는 결과가 됐다.

<최승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