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23일 현 경제위기상황에 대해 적잖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

김 당선자는 이날오후 낙선후보진영 위무와 협조요청을 위해 한나라당을
방문, 이회창 명예총재 조순 총재 등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불만"을 털어
놨다.

김 당선자는 이명예총재로부터 "어려울때 맡으셔서 대단히 힘드시겠지만
나라를 잘 이끌어 주시고 경제회복에 각별히 노력해 달라"는 말에 "어떻게
이 나라를 관리해 왔는지 직접 보니 (국고가) 텅텅 비어 있더라"면서 외환
보유고의 구체적 수치까지 들어가며 외환위기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김 당선자는 외환보유고 현황과 전망을 밝혔으나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했다.

최근 정부측으로부터 국정현황을 보고받으면서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한지는 몰랐다"고 실토한 적이 있는 김 당선자가 "국고바닥"을 거론한
것은 자칫 잘못하면 국가채무불이행 사태에 이를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비관적 시나리오와도 맥이 닿아 있어 현재 심경이 어떠한지를 짐작케 해준다.

김 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또 "국제신인도도 엉망"이라며 은근히 김영삼
대통령과 이 명예총재의 책임문제를 꼬집은 뒤 "위기가 기회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기회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김 당선자는 이날 이한동대표에게 "야당이 되니 기분이 어떠냐"고
농반진반의 질문을 던진 다음 "단련받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할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은 자신이 당한 것을 생각하며 더욱
잘할수 있다"고 말하는 여유도 보였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