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최고액면 지폐는 어떻게 변천해 왔으며 현재의 최고액면
지폐인 만원권은 그간의 국민소득증가와 지속적인 물가상승으로 어느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은행권은 지난50년7월 처음 발행됐는데 이때 최고액면 지폐는
천원권이었다.

한국은행은 53년 제1차 통화조치를 통해 화폐단위절하(1백분의 1)를
실시하고 호칭도 원에서 환으로 바꾸면서 최고액 지폐로 천환권을 발행했다.

5.16 군사쿠데타이후인 62년에는 제2차 통화조치에 의해 또다시
화폐단위절하(10분의 1)를 단행하면서 호칭을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5백원권을 최고액면지폐로 발행했다.

62년이후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으로 급속한 경제발전과 함께 물가도
큰 폭의 오름세를 지속했다.

화폐의 구매력가치가 계속 떨어짐에 따라 한국은행은 72년 새로운
화폐시리즈를 발행하게 됐다.

이때 최고액면지폐가 5천원권이었는데 이듬해인 73년 현재의 최고액면
지폐인 만원권을 발행했다.

우리나라는 50년이후 지금까지 4차례나 최고액면지폐를 바꿨으며
2차례에 걸친 화폐개혁이 없었다면 현재의 최고액면인 만원권은 50년
화폐단위로 무려 천만원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최고액면지폐의 갱신과정에서 현재의 만원권은 24년간 최고액면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가장 장수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최고액면지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60~70년, 일본
프랑스등에서는 40년이상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속도와 물가상승추이를 감안하면 24년이란
세월을 선진국과 단순히 비교할수는 없다.

만원권이 처음 발행된 73년이후 현재까지 경제규모는 GDP(국내 총생산)
기준으로 약 72배나 늘어나 소득의 절대수준이 엄청나게 확대된 반면 물가는
9배나 올라 만원권의 구매력가치는 최초 발행당시에 비해 9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편 73년이후 선진국의 경제규모와 물가성장률을 보면 미국의 경우
GDP는 약 5.5배, 물가는 3.5배 증가했으며 일본의 경우 GDP는 4.4배,
물가는 2.5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따라서 이들 국가도 소득증가와 물가상승은 겪었지만 경제지표의
변화정도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기 때문에 오랜 시일이
지나도 새로운 고액면지폐를 발행할 필요가 별로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급속한 경제변화에 상응하는 새로운 고액면지폐가
나오지 않음에 따라 10만원권 자기앞수표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로인해 위조수표가 성행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으며 수표추심및
보관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게 늘고 있다.

아울러 화폐제조및 유통 관리비용이 급증하면서 새로운 고액면지폐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과 달리 현금거래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새로운 고액면지폐가 발행될
경우 음성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새로운 고액면지폐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필요성은 물론
부작용을 우려하는 국민정서와 제도적 장치등을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 여운선 한국은행 발권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