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모처럼만에 안정된 모습을 나타냈다.

기세등등하게 달러당 1천9백원대까지 위협하던 환율은 1천6백원대로 주저
앉았다.

지난 5일 이후 오르막길로만 치닫던 매매기준율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16일 적용되는 매매기준율은 전일보다 93원90전 낮은 1천6백43원70전.

겉모습만 놓고 보면 안정국면으로 전환중이다.

따라서 환율추세선의 하향조정 징후인지, 아니면 일시적 현상인지 관심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환율 내림세가 외환당국의 강력한 시장개입에서
비롯된 만큼 단기적으로는 안정세를 기대해 볼만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환율 폭등세를 가져 왔던 악순환 고리가 차단될 수 있다는 분석
에서다.

"환율 불안심리->달러화 실종->소규모 결제수요 발생->환율 폭등"이 최근
시장흐름으로 요약되는데 외환당국의 매도개입으로 결제수요 충족이 가능,
폭등세로 연결이 안된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12일 외환당국이 2억달러 가량의 물량을 시장에 퍼붓자 환율은
상한선 행진을 중단, 1천6백원까지 밀리기도 했다.

또 15일에도 1천7백원 돌파시도도 한국은행의 달러방출로 무산됐다.

한 딜러는 "외환보유고에 대한 우려감에도 불구,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이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그동안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됐다는 반증"
이라며 "매도개입은 상당폭의 환율거품을 걷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주 후반부터 기업체들의 네고물량(원화환전을 위한 달러화 수출대금)과
개인 보유 달러화가 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점도 안정세에 큰 도움을 줄
전망이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달러화를 팔아야 할 시점이 아니냐고 문의하는 전화가
지난주말께 부터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외국인들이 들여오는 주식투자자금도 적은 액수이긴 하지만 시장으로 흘러
들고 있다.

또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주 토요일 한 외국계 은행이 주식투자를
위해 원화로 환전할 달러화가 있는데 12일 종가인 1천7백10원에 사 달라고
부탁을 해와 상당량의 달러를 사들였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 추가하락도 예상되던 터라 굳이 매입하지 않으려 했지만
해외상환용 수요도 있었고 향후 차입때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는 윗분들
판단때문에 상당량을 매입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외국인들이 환율급등에 따른 환차손 때문에 국내 증시 투자를 주저
했던 점에 비춰 이같은 움직임은 적잖은 시사점을 가진다.

물론 환율상승을 가져온 직접요인들은 아직 해소되기 힘든 상황이다.

채권발행이나 크레딧라인 재개등 해외차입이 다시 이뤄질 조짐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외환보유고가 단기외채를 갚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올해 이후에 대한 불안감까지 불식시키기는 힘든 양상이다.

외환시장의 불투명성은 여전히 높을 수 밖에 없다.

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해외 전주들은 여전히 한국을 못믿겠다는 시각"
이라면서 "북한과의 대치라는 우리만의 리스크를 감안하면 국제통화기금
(IMF)의 긴급수혈을 받은 태국 멕시코보다 더 나쁜 상황이 벌어질 수 도
있다"고 했다.

"섣부른 안정세 단정은 금물"이라는 얘기다.

이 딜러는 "환율안정이나 외환위기를 벗어나려면 해외차입을 재개하는게
급선무"라며 "대통령 선거직후 당선자가 경제운용 전반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해외투자자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기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