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우리정부의 구제금융 합의문이 워싱턴에서 공개됐다.

부실 시중은행의 폐쇄, 외국자본의 시중은행 인수를 포함한 엄청난 내용이
새로 드러났다.

정부는 그동안 시중은행에 대해서는 결코 인수합병이나 영업정지는 없다고
거듭 강조해 왔으나 IMF가 공개한 문서에는 두개의 시중은행과 9개의
종금사에 대한 명백한 처리지침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가 거짓말을 해온 것이다.

특히 종금사에 대해서는 12월2일자로 영업을 정지시킬 것, 관련법을 개정해
외국인들의 종금사 1백% 현지법인 허용 등이 새로 드러났다.

결국 지난 2일자로 정부가 취한 종금사 영업정지는 IMF와의 합의에 의한
사전 일정표에 따라 진행된 것임이 밝혀졌다.

결국 은행들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의 일정표가 짜여져 있음은 물론이다.

양측이 발표하지 않고 있는 부속문서에는 종금사들의 이름과 함께 폐쇄
가능성이 있는 두개 은행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6일 새벽 본보와 접촉한 재경원의 한 고위 당국자는 "구체적으로 대상은행
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상태에서
2개라는 숫자가 한정될수 없다는 데서 그동안 정부가 주장해 왔던 "은행은
없다"는 말은 거짓말임이 명백해졌다.

시중에서는 이미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이 자구대상이라는 풍문이 꾸준히
나돌아왔다.

이것이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IMF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 두개은행은 앞으로 2개월 내에 구조조정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은행감독원의 상시감독을 받게 된다.

자구계획에는 다른 금융기관과의 합병이나 업무의 일부 또는 전부를 처분
하는 안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감독당국이 이 자구계획안을 검토한 끝에 4개월안에 목표를 달성할수
없다고 판정할 경우 이들 은행도 폐쇄 조치된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내년 3월말까지 대손충당금과 유가증권 평가충당금을
완전히 쌓을 것을 요구받는다.

이들은 6월까지 자구계획을 내야 하고 자구계획 기간동안 배당동결, 임원
보수동결, 감독당국의 중대영업에 대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결국 IMF와의 합의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상상을 넘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담고 있음이 드러났다.

때마침 고려증권이 결국 부도를 냈다.

더욱이 이날은 임창열 부총리가 IMF합의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었고
금융기관들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선언된 날이었다.

결국 지난 2일 9개 종금사에 대해 영업정지가 내려진 이후 금융계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고 또 거대한 통폐합과 폐쇄의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다.

고려증권이 그 첫 희생자가 된셈이다.

우리나라 금융사에 첫 부도사태로 기록될 고려증권의 부도는 결국 IMF와
정부가 합의한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하나의 격발점으로
작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앞으로 일정기간 동안은 금융기관 부도사태가 다반사가 된다고 할
만큼 금융기관들간에는 숨막히는 투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떻든 고려증권의 부도는 다른 금융기관들에도 냉엄한 구조조정이 개시될
것임을 예고해 놓았다.

"회생불능의 금융기관은 폐쇄 조치하겠다"는 정부와 IMF의 공동선언은
1단계는 연말까지, 2단계는 내년 3월말까지, 3단계는 내년 6월말까지 순차적
으로 부실금융기관들을 퇴출시켜 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외국금융기관이나 거대 투자기관들의 국내시장 진입은 가뜩이나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화될 금융시장을 더욱 치열한 전장으로 만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부도를 내는 금융기관들은 하이에나 처럼 달려들 외국금융기관들에 언제든
인수될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나왔으되 아직 새로운 행동요령은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IMF 합의문은 엄청난 파장을 예고해 놓고 있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