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기본 입장은 "밑빠진 독에는 물을 붓지 않겠다"는
것이다.

IMF는 과도한 차입경영과 대기업그룹의 계열사 상호채무보증 관행을
"밑빠진 독"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부실한 계열사 하나가 망하면 멀쩡한 기업까지도 쓰러지게 만드는
상호채무보증 관행을 조속히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IMF의 합의내용은 이렇다.

"계열기업군의 상호지급보증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연쇄도산의 위험을
축소"함이다.

해소범위나 시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현재로선 지난 4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라 내년 3월말까지 자기자본대비
채무보증비율 1백% 초과분을 해소해야 한다.

정부가 이를 2000년까지는 0%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건
차후 문제다.

그동안 재계는 채무보증을 급속하게 줄이면 상거래와 금융거래질서의
교란을 가져와 금융비용부담증가, 수출 및 투자활동 위축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유보를 요구해왔었다.

특히 신용 담보가 부족한 기업들은 차입금상환 이외에는 방법이 없어
운영자금도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부채상환 자금수요까지 겹쳐 도산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지난 4월 현재 30대그룹의 채무보증금액은 모두 33조1천5백억원.

자기자본총액 70조4천6백억원의 47%에 이른다.

채무보증비율이 1백%를 초과해 한도초과보증을 해소해야 하는 회사는
24개 그룹 80개사.해소대상금액은 6조7천억원 수준이다.

여기서 채무가 동결된 기아와 진로를 빼도 22개 그룹 73개사 6조5백억원에
이른다.

이 73개사는 앞으로 1백여일내에 이 금액에 대한 보증을 해소하기 위해
담보를 새로 제공하거나 아니면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마감직전에 자금수요가 몰릴 것으로 보여 내년
3월말께는 또 한번의 금융대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유예조치를 취해주지 않을 경우 이들 기업이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우선 한계사업을 조속히 정리하는 것이다.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져 있거나 적자가 누적된 회사 또는 사업을 정리해
부채를 갚고 지급보증을 해소해가는 것이다.

그 길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주식시장에서 증자를 하거나 부동산을 팔면 된다지만 현재로선 둘
다 불가능한 실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병욱 금융재정실장은 "30대그룹의 자기자본대비
채무보증비율이 93년 3백40%에서 지난 4월현재 47%로 빠른 속도로 축소돼
왔다"며 "축소목표와 시한을 정하지 말고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방안을
강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채무보증은 금융권이 만든 관행"이라며 "담보대출을 줄이는 대신
신용대출을 늘리든지, 재무구조가 견실한 대기업에는 차별적으로 채무보증을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