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협상이 1주일만에 끝났다.

지난달 27일부터 휴일도 반납하고 심야까지 계속된 협상은 3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와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공식조인식을 가짐으로써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협상과정은 숱한 우여곡절과 반전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측 협상단은 책임감 이전에 참담함부터 느껴야 했다.

국내 금융계를 호령하던 재정경제원은 연일 굴욕외교의 쓴 맛을 봐야 했다.

심지어 대선후보들까지 향후 협상내용을 준수한다는 각서를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IMF측이 구제금융을 전제로 우리측에게 제시한 조건들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했다.

정부 기업 가계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극도의 긴축과 내핍을 강요당했다.

경제성장률이 절반이하로 떨어지고 내년에는 기업들의 연쇄도산과 감량
경영에 따라 1백만명이상의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진다는 우울한 전망들이
잇달아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한 쪽은 우리였다.

어느정도의 손해나 피해는 감수해야할 처지였다.

국책은행들마저 외화부도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임부총리가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가운데 지난 29일과 30일 서울 힐튼호텔
에서 열린 심야회의에서 우리는 IMF측이 요구한 대부분의 조건을 수용했다.

1일 새벽 협상타결을 발표하는 임부총리의 표정은 침통했지만 외환위기를
벗어날 수있다는 안도감도 어려 있었다.

임부총리는 임시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뒤 협상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말레이시아의 "아세안+6개국" 회담에 참석중이던 미셸
캉드쉬총재가 "협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간단히 일축하고 나서면서
협상은 한치앞도 볼 수 없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양측은 이날 오후3시부터 다시 협상에 들어갔다.

IMF는 경제성장률을 더 낮추고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즉각 나설 것을 요구
했다.

다급했던 우리는 마침내 2일 9개 종합금융사의 영업정지조치를 발표하고
IMF측에 협상의 조기타결을 촉구했다.

이동안에 국내 금융시장은 주가폭락과 환율급등으로 일대 혼란에 빠져들고
기업들은 운영자금을 구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금융기관을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나 IMF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협상 실무진들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비로소 IMF의 배후에 미국과 일본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의 이해를 충족시켜주지 않고는 협상타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무회의는 두번이나 연기됐다.

미국은 금융시장의 추가및 조기개방을, 일본은 수입선 다변화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IMF의 구제금융을 계기로 그동안 한국에 요구해왔던 것들을 한꺼번에 얻어
내자는 속셈이었다.

이제 최종판단은 임부총리의 몫이 아니었다.

김영삼대통령의 정치적 결단과 국민들의 양해가 필요했다.

3일 아침 김포공항에 도착한 캉드쉬총재는 여전히 뻣뻣한 모습이었다.

이날 오전9시30분으로 예정돼있던 조인식도 연기됐다.

IMF 미국 일본은 마침내 최후의 조건을 제시했다.

협상이행각서에 3당 대통령후보들의 싸인을 요구한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난 1주일동안 IMF와의 협상은 이처럼 청와대와 정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에 씻을 수없는 상처를 남긴채 끝났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