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 협상이 마무리됐다.

이번 협상을 커튼뒤에서 설계하고 지휘해왔던 미국은 그동안의 요구조건들을
모두 관철시키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외형상으로는 IMF의 휴버트 나이스 단장이 협상의 파트너였지만 내용적
으로는 미국의 이해가 철저히 관철되는 양상이었다.

한국정부는 결국 스스로를 궁지에 빠뜨린 끝에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안방을
미국자본에 모두 내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구제금융을 받기는 하지만 대가는 대단히 비싼 것이 되고 만 셈이다.

금융위기를 당한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비슷한 결과를 맞았다.

미국이 이번 IMF 구제금융 협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IMF협상단과 우리나라의 협상이 진행되는 막바지 기간 동안 미
재무성의 고위관계자가 서울을 극비리에 방문해 있었던 것이 확인되고 있다.

데이비드.A.립튼 재무성차관은 협상 마지막 기간동안 하이야트호텔에
캠프를 차리고 힐튼 호텔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IMF간 협상을 막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에 참가한 우리측의 고위관계자는 "사실은 그가 협상의 창구였다고 할
정도로 휴버트나이스 단장은 사사건건 간섭을 받았다"고 밝히고 "결국
우리로서는 별다른 협상수단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며 협상과정에서
미국측으로부터 심한 압력을 받았음을 시인했다.

이런 막후 조종을 통해 미국은 그동안의 과제였던 금융시장 개방이라는
전리품을 얻어 챙겼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어음 시장을 외국인에도 개방하고, 보증사채 시장을
개방하며,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현지법인이나 합작법인 설립을 허용했다.

이들 사항들은 OECD협상 등을 통해 미국측이 끈질기게 요구해 왔던
사항들도 미국 은행들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미국이 막판에 제기한 국내대기업들의 차입해소, 산업구조조정 역시 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자동차 산업등에는 상당한 제어장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금융위기는 결국 미국에는 절대호기로 작용했던 셈이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