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최완수기자]

"개방적 지역협력"을 추구해 온 아.태경제협력체(APEC)가 26일(한국시간)
5차 밴쿠버 정상회의를 계기로 새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난 93년 1차 시애틀 정상회의를 비롯, 그동안의 APEC은 주로 역내 무역.
투자자유화 원칙에 합의하는 구체적인 이행일정을 잡는데 역점을 두어
왔지만 이번 밴쿠버회의는 종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줬다.

한국과 동남아의 금융위기라는 긴급하고 구체적인 역내 현안을 놓고 APEC
사상 처음으로 회원국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 금융위기 공동대응,
역내 협력금융체제 구축 등 일정한 합의를 도출해 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준비과정에서는 의제에도 포함돼 있지 않던 역내 외환 및 금융불안
문제가 의장국인 캐나다의 주도로 최우선 의제로 설정되고 다른 회원국
정상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의해 이날 정상선언문에까지 포함된 것은 평가
받을만하다.

APEC가 21세기의 아.태 공동체를 규율할 무역.투자자유화라는 규칙을
정하고 이행방식을 마련하는 추상적인 논의의 장에서, 역내의 시급한 현안에
대한 구체적 대응책을 모색하는 현실적인 협의의 장으로 변모한 셈이다.

회원국 정상들은 정상선언문에서 금융안정을 위한 역내 협력증진에 강력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도 마련, 빠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1월 APEC 재무장관회의를 열어 이에 관한 보고서를 채택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나라 등 아시아국가들이 추진해온 가칭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창설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아시아국가들이 자금을 염출해
기금을 만들고 IMF의 틀안에서 이를 판단, 집행하는 형태로 보완해 나가기로
한 것도 성과로 볼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김영삼대통령이 정상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현재 한국 및
동남아의 금융위기가 비단 해당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상호연관된
공동현안임을 적극 부각, 회원국 정상들로부터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와함께 이번 APEC은 무역.투자자유화의 기본골격을 토대로 한 역내
회원국의 세부적인 실천계획안인 "마닐라 실행계획안"(MAPA)의 첫 이행원년
으로서 회원국 정상들이 그동안 APEC이 추진해온 구체적 결과를 평가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공평한 개발 <>인력자원의 잠재력 개발 등의 결의를
다진 것도 의미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