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안정책을 건의하러 갔더니 화부터 냅디다.

경제단체가 앞장서 불안심리를 조장한다나요.

밖에서는 우리 경제 거시경제지표가 좋다고 하는데 왜 안에서 난리들이냐며
신경질을 내더군요.

결국 어떻게 됐나요. 국가가 부도난 꼴 아닙니까"

금융대란의 조짐이 고조되던 지난 10월초 관련 부처를 돌다 무안을 당했던
전경련 관계자가 정부가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한 22일 밤에 토해낸
불만이다.

전경련 보고서가 새 정부에 권고하는 으뜸 과제로 "경제비상대책 강구"를
내세운 이유는 그의 이 말에 잘 담겨 있다.

경제위기가 고스란히, 아니 더 악화된 상태로 새 정부에 넘겨질게 뻔한
상황에서 더 이상 절실한 과제는 없다는 것이다.

경제는 기회를 잡는게 중요하고 실기할 경우엔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만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오로지 정부정책의 실패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전경련은 올들어 정부가 민간경제계의 진단과 처방에 귀만 잘 기울
였어도 기회는 적지 않았었다고 아쉬워한다.

올들어 전경련이 정부 관련 부처에 제출한 건의는 줄잡아 1백여건.

이 가운데 받아들여진 경우는 10여건도 채 안된다.

그것도 대부분 때를 놓친 것이었다.

정부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10월에만 세차례나 금융시장 안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재계로서는 그러니까 간절한 심정에서 새 정부에 경제비상대책 강구를
주문하고 있는 셈이다.

현정부는 극심한 레임덕현상에 시달리면서 경제위기극복책을 제대로 시행
하지 못했지만 새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경제살리기를 국민운동화 하면서
실효성있게 추진할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갖고 있다.

전경련이 권고하는 경제비상대책은 <>임금상승 억제 <>근로계약법 제정
<>저축 장려 <>구조조정촉진 특별법 제정 <>금융실명제 보완 등 다섯가지로
요약된다.

전경련은 우선 최소한 앞으로 5년간 임금상승률을 총액기준 3%이내로 억제해
임금을 안정시키고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건전한 노사관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앞으로 IMF의 "신탁통치"가 본격화되면 기업과 금융기관의 고용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이 경우 발생할 노사마찰을 최소화하는 것이 차기정부의 시급한
과제라는 설명이다.

근로자들에게 더이상의 임금인상은 불가능하고 고용안정을 위해서라도
임금은 안정돼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차기 대통령에게
부과된 숙제다.

전경련은 차제에 노동관계법도 재개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노사 양측을 대립관계로 보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폐지하고 근로계약법
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장수급 변화에 탄력적이며 다양한 고용계약이 가능하고 노사의 자율성을
고양시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법제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새정부가 국민들의 헤푼 씀씀이를 진정시켜 산업자금화할수 있는
복안도 출범초기에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5년 이상의 예금및 채권에 대해서는 세금감면을 해주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지난 92년 27.1%였던 민간저축률이 지난해에는
23.7%로 떨어졌다"며 "가계의 소비성 자금을 저축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금융시장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정부가 "개별법 개정으로 충분하다"며 미루다 결국 때를 놓쳐버린 구조
조정특별법 제정도 새정부라면 할수 있다는게 전경련의 기대다.

가칭 "기업의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면 <>총액출자제한
<>M&A 규제 등 부실기업 정리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각종 규제를 한꺼번에
제거할수 있다는게 전경련의 설명이다.

또 이왕에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만큼 외국자본의 국내 M&A시장 참여
기회도 대폭 열어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을 조기정리할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명분보다는 부작용이 더 커지는 바람에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금융실명제
도 차기 정권이 보완해야 할 핵심과제로 재계는 보고 있다.

3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지하자금을 끌어낸다면 금융시장의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전경련은 금융거래에 대한 비밀보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위해 실명전환시 자금출처조사를 폐지하는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현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최대 치적으로 여기고
있어 누구도 손을 댈수 없었다"며 "묶인 돈을 풀어내고 금융관행이 선진화될
때까지 금융실명제를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또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규제완화를 위해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규제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규제를 당하는 당사자들이 규제를 걷어낼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새정부는 반드시 정책실천의지가 분명한 경제각료를 선임해야
한다고 전경련은 권고하고 있다.

빈번한 경제각료 교체를 지양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조기에 우리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설명이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