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IMF의 우산아래 통화위기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다스려 가는
분위기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7월초 태국에서 촉발된 통화불안이 파급되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히 SOS를 타전했다.

7월말로 만기가 도래한 4천7백50억 상당의 특별인출권(SDR,6억5천2백만달러)
의 상환을 올 연말로 연기하고 확대신용공여(EEF)폭을 3억1천6백70만SDR
(4억3천5백만달러)만큼 추가로 설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동남아 통화위기 이전 줄곧 26페소대에서 머물러온 필리핀 페소화는 30%
추락, 달러당 36페소까지 내려 앉았다가 현재 34페소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태국 바트화가 60%이상 폭락한데 비하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마닐라의 종합주가지수도 33.1%정도 빠진후 하락세가 주춤해진 상태다.

외환및 주식시장이 요동치는 틈에서도 무역장벽제거등 경제개방정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IMF와의 공조역시 순조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금융구조가 상대적으로 건전해 부실 금융기관에 따른 부담이 적다는게
커다란 잇점이다.

이웃나라 태국이 금융산업에 대한 대수술을 감행해야 하는데 비하면 IMF의
간여아래 처리할 짐이 한결 가벼운 셈이다.

한때 팽팽한 마찰을 빚었던 내년도 경제성장률 목표도 결국 IMF의 요구에
따라 5.3%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이와함께 내년 인플레율은 7.5%로 상향조정했고 국채 유통수익률의 경우
13.8%선을 고수하던데서 물러나 15%로 인상키로 했다.

현재 양측간 이견이 남아있는 부분은 내년도 재정적자 규모정도.

필리핀이 1백60억페소를 고집하는 반면 IMF는 38억페소 수준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이코노미스트들은 필리핀 정부가 IMF가 내건 선결조건들을
무리없이 이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PEC 회담에 참여차 캐나다를 방문중인 피델 라모스 대통령은 24일
비즈니스 간담회에서 "아시아 경제를 하나로 싸잡아 논하지 말라"고 주문
했다.

그만큼 자국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필리핀 경제에 대해 완전히 낙관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IMF의 압력에 못이겨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또다시 하향조정함에 따라 외국
투자가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위험이 있다.

만일 경제가 뜻대로 회복되지 않을 경우 당초 올 연말로 "IMF 경제통치"를
벗어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 김혜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