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졌다.

채권시장에서는 거래가 뚝 끊긴채 수익률만 하늘높은줄 모른채 치솟고 있다.

회사채 유통수익률(3년)은 무려 연16.05%까지 폭등, 지난 92년 9월(16.05%)
이후 5년2개월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에서 이날 무려 5조7천3백억여원의 돈을 풀었지만 돈은 은행권
에서만 맴돌뿐 종금사나 기업들에게는 흘러가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특히 종금사나 은행에게 돈 빌려주기를 꺼려 한은의 지원자금을
사실상 거부하는 사태까지 초래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함에 따라
재정및 통화긴축을 단행할 것을 우려, 대기업들이 대거 자금가수요에 나서고
있는데다 금융기관들이 초단기로 자금을 운영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리상승세는 IMF의 구제금융조건이 확정되고 재정및 통화긴축정도가 확연히
드러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여 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 현황 =채권시장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24일 오전장에는 전날의 연14.50%보다 0.80%포인트 높은 15.30%에서 호가가
형성됐다.

오후들어선 연16.05%까지 뛰어올랐다.

이날 현대 삼성 LG 대우 등 대기업들이 2천3백59억원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실제 소화된 물량은 LG유통 50억원 현대자동차 50억원 등 1백억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기업들은 매수세력이 없어 발행계획을 취소했다.

한마디로 회사채시장이 기업의 직접금융시장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CP(기업어음)시장도 비슷한 상황.

지난주부터 현대 삼성등 초우량기업들이 1천억~2천억원의 CP 발행을 하면서
CP할인율은 연일 상승직선을 긋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날 환매채(RP) 매입을 통해 6조원, 통안증권 중도환매를 통해
1조1천억원 등 총7조1천억원을 시장에 방출했지만 금리급등세를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은의 지원자금은 은행에만 집중돼 정작 돈이 필요한 종금사나 기업들에겐
흘러가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자기부족자금 맞추기에만 급급, 이날 한은이 3조원의 통안증권을
중도환매하려 했지만 은행들의 참여부족으로 1조1천1백억원만 중도환매되는데
그쳤다.

<> 원인 =IMF 구제금융으로 재정및 통화긴축이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감이
주된 요인이다.

여기에 종금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조만간 단행될 것이란 경계심이 자금시장
을 마비로 이끌었다.

IMF가 재정및 통화긴축을 요구하면 시중유동성은 축소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금리는 오르게 된다.

기업들은 이에 대비, 중장기 자금확보에 나섰다.

이에 따라 이번주 회사채 발행물량이 9천89억원에 달하는등 공급초과현상이
심화됐다.

그러나 주요 매수세력인 금융기관들은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관망세를 유지, 삼성 대우 쌍용 등 초우량기업마저 회사채 발행물량을
거둬들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은행들은 더욱이 종금사에 대한 구조조정에 대비, 원화자금 공급을 꺼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이 이날 7조원이 넘는 돈을 풀었지만 은행유동성만 호전될뿐
자금사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 전망 =IMF의 구제금융 조건이 확정되는 단계까지 금리상승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한 관계자는 "지금은 자금시장의 공황상태"라며 "IMF의 구제금융으로 외화및
원화사정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당분간 금리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란 심리가 확산돼 좀처럼 채권매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업자금 가수요가 심화되고 있어 이같은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