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정부의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 이후 가속화될 경영환경
변화에 대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저수익 저효율 사업에선 과감히 손을 떼고 전망이 불투명한 경우는
회사까지 매각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대부분의 그룹들이 내년도 사업계획의 전면 재조정 작업에 착수,
''IMF 관리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타율적인 경제구조조정에 떠밀리기에 앞서 미리 스스로의 체질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가장 먼저 변화를 선언하고 나선 곳은 한화그룹.한화는 24일 계열사 매각과
주요 계열사의 본사 이전, 인원정리 가속화 등 메가톤급 내용을 담은 구조
조정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주로 중화학공업 중심의 사업구조 때문에 10대그룹 중에서도
외부환경변화에 가장 둔감하다는 평을 받아온 한화가 이처럼 빨리 움직이게
된 데는 역시 IMF구제금융 신청이 도화선이 됐다.

한화는 당초 지난해말부터 "혁명적인 개혁"작업을 벌이면서 추진해온
사업구조조정계획을 지난 7월에 확정,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었다.

그러나 이날 김승연 그룹회장이 경영전략회의에서 "IMF구제금융을 신청한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하에서는 기업의 한발 앞선 대응과 더욱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즉시 시행할 것을 지시, 이날 발표하게 된 것이다.

현대그룹은 당초 이날 확정, 발표키로 했던 내년도 사업계획을 전면
보류하고 수정 보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대는 특히 제철사업 등 그룹의 대규모 투자사업에 대한 정부와 IMF측의
입장을 살피면서 정부에 국가 기간산업 확충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작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에 대응하는데는 역시 몸집이 가벼운 중견그룹이 더 유리한 편이다.

신원그룹은 이날 "IMF구제금융신청으로 경제전반에 특단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며 그룹차원의 내핍경영을 골자로 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신원은 특히 외화절약 방안으로 우선 외화차입 규모를 크게 낮춘 "자금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 해외생산의 경우 원부자재의 국산구매 비율을
현재 70%에서 80%로 늘리는 한편 해외수입 비율을 36%에서 20%로 낮추기로
했다.

또 직수입 브랜드 수입량을 최소화하고 라이선스 브랜드의 재계약도
재고키로 했다.

뿐만 아니다.

해외에서의 광고촬영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임직원들에게 <>해외출장때
국내 항공사 이용하기 <>수입물품 안사기 <>외국 패스트푸드점 이용 안하기
<>부사장급 이하 임원의 업무용 차량 자가운전 등을 권유키로 했다.

거평그룹도 이에 앞서 지난주말 (주)거평과 거평시그네틱스를 합병하고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등 대대적인 그룹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거평은 이 계획에서 내년말까지 건자재사업부문을 축소하고 유휴부동산
매각과 유상증자로 투자재원을 마련해 반도체와 정보통신 멀티미디어 등을
집중 육성키로 했다.

내년 사업계획 조정 뿐만이 아니다.

모든 부문에서 내핍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LG가 이날 실시된 사장단 인사를 철저히 성과중심으로 한 것이나
선경그룹이 해외에서 열기로 했던 사장단 회의를 취소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IMF가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기업들에는 투자축소와
기업재무구조 개선이라는 과제가 지워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기업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