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법안 처리가 막판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일정상의 문제다.

그러나 한은법 개정안과 통합 금융감독기구 설치법에 대한 금융권 또는
사회적 비난이 높아지고 있는 등 상황의 변화도 만만치 않다.

재경위의 법안 심사 과정이 지나치게 통과만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
내용적으로는 상당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따라서 오는 17일 재경위 전체회의가 다시 열리더라도 현재까지 확정되고
수정된 13개 금융관련 법안들이 모두 제대로 통과처리될지는 미지수다.

예를들어 한은법이나 통합감독기구 설립법은 계류상태로 남고 나머지
11개 법안들만 통과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또 한은법이나 금융감독기구 설립법이 처리되더라도 법안소위에서
합의본 내용이 다시 변경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

예를 들어 통합감독원을 재경원 산하로 했던 것을 당초안대로
국무총리실로 두거나 한은과 재경원의 관계를 재조정하는 등의 상당한
타협안이 나올수 있다.

한은법이나 금융감독기구 설립법은 특히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한국은행의 독립여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합의를 보고있고
한은측에서도 반론이 적지만 은행감독원을 분리해 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다.

통합감독원 문제는 증권 은행 등 3개 감독기구에 상당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양보안이 나와있지만 이 역시 반론이 적지않아
통과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은법이나 통합감독원 법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하지 않는다고
해서 금융빅뱅이 무산되거나 좌절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한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 법의 의미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 2개법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법안들의 내용만으로도
엄청난 빅뱅이 약속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당장 통합예금보호기금을 통해 종금사 등의 합병을 유도하고 금융기업의
퇴출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점은 가장 주목할 대목이다.

예금자보호법은 특히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정부재산을
예금보호기금에 무상양여할수 있도록해 금융회사들에 대한 강제정리의 길을
터놓고 있다.

더욱이 보험 증권 은행 등에 전업주의적 업무영역 허물기가 가속화되고
이는 금융시장에도 치열한 경쟁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30대 기업에 연결재무제표를 의무화한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나 은행의
비상임 이사제를 확충하고 있는 은행법 개정안은 금융빅뱅을 불러오는
인프라의 구축이라는 적지않은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종금업법 개정안이나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법개정 사항들도 모두
금융기관 영업 행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

종금사들의 동일계열에 대한 여신한도가 1백%로 제한되는 등은
금융기관들의 건전성의 제고라는 점에서 기존의 대출구조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때문에 정부가 굳이 이번에 한은법이나
통합감독원법을 연연하지 말고 가능한 개혁부터 서둘러 시행해나가는
전략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은법에 연연해 개혁구도 전체를 와해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말도
된다.

<최승욱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