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회장단회의의 결과인 "금융실명제 유보"는 전경련 사무국 직원들
조차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폭탄 선언"이었다고.

사무국은 "최근 경제동향" 보고자료에 금융실명제 보완조치로 무기명장기
채권발행 등이 허용에 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을
뿐이였는데 보고 도중 일부 회장들이 "이 기회에 금융실명제의 문제점을
우리가 책임지고 제기하자"며 의안으로 제기했다는 것.

최종현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예정을 1시간이나 넘긴 오후 1시까지 토론을
벌인 결과 "단기적인 금융안정책 보다는 금융실명제의 실시 중지를 통해
한꺼번에 경제위기를 해결하자"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전경련 사무국 관계자는 "올 3월부터 회장단회의 형식을 사무국 보고
추인이 아니라 난상토론으로 바꾼 것이 진가를 발휘한 것 같다"고 자평.

<> 회장단은 이날 오전 10시20분께부터 전경련 2층 회장실에 모여 굳은
표정으로 경제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

조석래 효성그룹회장이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듯 "최회장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보니 경제가 잘 될 모양"이라고 덕담을 하자 최회장은 "그리 됐으면
좋겠지만 경제가 너무 어려워져 큰 일"이라며 "모두들 어렵다고 해도 믿지
않더니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져야 정신을 차리려나"며 개탄.

이에 조회장은 "국민들이 경제인을 믿지 못해서 그렇다"며 "경제가 추락
하고 나서야 경제인들 말이 맞았구나 할 것"이라며 한숨.

박정구 금호회장도 이에 동의하며 "기업인들이 얘기하면 또 엄살이라고
보는 왜곡된 시각이 문제"라고 한마디.

<> 한편 12일 저녁까지만 해도 참석을 통보해 관심을 모았던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은 이날 아침 독감을 이유로 불참.

이밖에 정몽구 현대회장과 구본무 LG그룹회장은 사내 행사를 이유로,
김우중 대우회장은 해외 출장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재계 서열 1-4위 그룹회장이 불참했지만 금융실명제
유보와 관련해서는 이미 손병두 부회장이 지난주 충분히 회장단사를 돌며
취지를 설명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재계내 이견을 없을 것이라고 설명.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