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서 30대그룹 후보군에 속해있는 중견그룹들에 비상이
걸렸다.

올 한해동안 대기업그룹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내년에는 규제망 투성이인
30대그룹에 들어갈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비교적 규제의 강도가 덜 받으며 사업구상을 펼쳐오던 이들은
30대그룹 진입에 따른 대책마련에 나서는 한편 일부는 30대그룹을 피하기
위한 자산줄이기 작전에 돌입하고있어 주목된다.

현재 30대그룹 진입이 유력시되는 업체로는 재계 31-40위권에 속해있는
강원산업 극동건설 통일그룹 동양화학 새한 벽산그룹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올해 사업을 활발히 펼친 강원산업이 자산기준 2조4천억원선
으로 다소 앞서나가고 있다.

나머지 그룹의 자산규모는 2조-2조1천억원 내외에 몰려있다.

이들에 비해 약간 뒤처지나 삼성과 현대에서 각각 분리된 제일제당과
금강그룹의 자산규모도 각각 1조8천억을 웃돌고있어 30대그룹 후보군으로
떠오르고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그룹순위 기준인 자산으로만 따지자면 지난해 30대
그룹 커트라인(신호 2조1천5백80억)을 통과하는 업체는 현재 2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30대에서 부도를 내 현재 법정관리나 화의를 준비중인 회사만
기아 진로 해태 뉴코아등 4개. 여기에 계열사매각등으로 몸집을 크게 줄인
업체들도 적지않아 5-6개 그룹이 새로 30대기업군에 속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기업으로선 큰 "명예"라고 받아들수있는 30대그룹 진입을
한사코 꺼리고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겉모양만 그렇듯할 뿐 실속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들 업체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지난 1년 사이 사업을 확장한게 없는데도
규제지뢰밭인 30대그룹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30대그룹에 들어가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규제는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한도의 적용.

특히 내년 4월부터는 계열사간 보증한도가 현재 자기자본의 2백%에서
1백%로 줄어들어 상당수가 초과분의 빚을 갚던지 추가로 담보를 마련해야
할 입장이다.

또 출자제한으로 신규사업에도 당장 차질이 예상되고있고 계열사간 합병
등을 통해 발생하는 계열사간 상호출자도 전면금지된다.

신규진출분야도 제한돼 올해 30대에서 빠진 벽산의 경우 그대로 있었다면
케이블방송 지역보급사업(전남동부방송)은 손도 못댈뻔했다.

이에따라 강원산업은 자산을 줄여야한다는 기본원칙 아래 불용자산을
예정보다 빨리 처리해 나가기로했고 통일그룹은 자구노력을 겸해 계열
사매각도 검토중이다.

또 극동은 30대그룹에 들어갈 것에 대비, 계열사간 채무보증한도및
출자한도 초과분에 대한 해소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관련,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잇딴 부도와 강도높은
자구노력으로 30대그룹내 상당수가 교체될 것"이라면서도 30대그룹에
대한 규제가 기업들의 자구노력에 걸림돌이 되고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비효율적인 사업확장을 규제하기 위한 것으로 사업구조조정을 오히려
촉진하게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업계는 "세계의 초대형 다국적 기업들이 시장개방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무차별 경쟁을 벌이는 판에 우리 기업을 30대그룹이란 이름으로 묶어
두고 규제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30대그룹 지정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전경련도 최근 5대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에 대한 규제를 철폐할
것을 정부에 공식건의한 바있다.

<김철수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