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화폐액면체계는 그 나라 사람들이 오랜동안 익숙해져온 화폐
사용습관 등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현상이나 경제현상에도 일정한 규칙과 이를 체계화한
이론이 있듯이 화폐액면체계에 대해서도 몇가지 이론이 있다.

이중 널리 알려진 것이 "바쉐(Bachet) 정리"와 "디메트릭(D-metric) 방식"
등이며 이를통해 화폐의 액면체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게 이해할수
있다.

우선 바쉐정리를 이용한 액면체계이론은 가장 적은 양의 지폐와 주화를
가지고 거스름돈을 가장 적게 만들수 있는 최적의 액면단위를 어떻게 구성
하는냐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래 바쉐정리란 접시저울(천칭)로 물건의 무게를 잴때 3진법에 따라
저울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적은 수의 저울추로 물건의 무게를 잴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접시저울에 의해 저울추와 물건의 무게 균형을 잡는 것은 현금거래
에서 재화와 용역 등을 화폐와 등가교환해 결제를 끝내는 이치와 동일하다.

바쉐정리는 화폐 발행단위가 액면금액 기준으로 평균 3배씩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최적의 조합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가령 미국 달러화의 액면체계는 [1, 5]와 [1, 2, 5]의 혼합형태로
실제의 액면단위는 센트의 경우 [1, 5, 10, 25]이며 달러의 경우
[1, 5, 10, 20, 50, 1백]이다.

따라서 차상위 액면금액과의 차이가 평균 3배가 되어 바쉐정리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2배수 체계를 가진 나라가 더 많다.

즉 각국은 거스름돈을 최소화해 현금거래의 편의성을 도모하는 것외에도
국민들의 화폐사용관습 제조.유통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액면체계를
결정하게 된다.

한편 디메트릭방식은 지폐와 동전의 적정 액면수준을 결정할때 근로자의
1일 평균임금수준(D)을 기준으로 <>최저액면동전은 D의 0.02~0.05% <>지폐와
동전의 경계가치는 D의 2~5% <>최고액면지폐는 D의 2~5배 수준으로 결정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최저액면동전은 2~3센트(실제는 1센트), 동전과
지폐의 경계는 2~5달러(실제는 25센트와 지폐 1달러), 최고액면지폐는
1백86~4백65달러(실제는 1백달러)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나 실제
액면체계와는 괴리감이 있다.

반면 독일의 경우 최저액면동전은 3~7페니히(실제는 1페니히), 동전과
지폐의 경계는 3~7마르크(실제는 5마르크), 최고액면지폐는 2백83~7백8마르크
(실제는 1천마르크) 수준에서 결정돼 디메트릭방식에 대체로 근접해 있다.

현재 디메트릭방식은 한 나라 액면체계의 적정성을 따지고 이를통해 새로운
화폐발행의 필요성등을 판단하는 근거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이 처음 도입된 1970년대의 경제상황과 지급결제제도 등은
지금과 많은 차이가 있어 현시점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한 나라의 화폐액면체계는 바쉐정리에서 나타난 거래의 편의성 측면
과 더불어 경제여건및 국민들의 현금거래 관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여운선 한국은행 발권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