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중공업 B사장은 요즘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있는 환율때문이다.

이회사의 사업구조는 크게 조선과 기계로 양분된다.

조선부문이 뜻밖의 환차익을 누리는 반면 기계부문의 한숨소리는
깊어지는게 B사장의 표정관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회사에서 똑같이 "쇠"를 다루며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왜 이렇게
명암이 엇갈리는 것일까.

대금결제방법, 시장동향 등 여러가지 원인이 나열되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술력"차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선분야가 상당한 수준의 기술자립을 이룩한 반면 기계업종은 핵심부품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상승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송병준 기계연구실장은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품의
해외판매가격도 낮아져 수출이 늘어나야된는게 정상"이라며 "부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계의 경우 원자재가격이 덩달아 상승해 가격경쟁력의
효과가 없어져 버렸다"고 진단했다.

기계공업진흥회 양정환 조사연구실장도 "최근 발전설비 내연기관용 펌프
등을 중심으로 달러화 결제를 해야하는 미국산 부품수입이 크게 늘어나
업계에 원가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희비는 더욱 뚜렷해진다.

우선 조선분야는 올해 사상최대의 수주물량 확보와 함께 환차익이란
선물까지 겹쳐 지난해까지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낼 전망이다.

조선업체는 선박건조계약이 체결되면 대금을 보통 4회에 걸쳐 나누어
받는다.

계약시 20%, 설계가 끝나고 20%, 진수식후 20%, 명명식과 인도를 마치고
40%이다.

그것도 모두 빳빳한 현금달러화로 받는다.

한진중공업 기획팀 우건곤차장은 "작년말 8백50원에 계약한 선박을
지금은 9백60원을 받으니 앉아서 1백원 이상 번 셈"이라며 "조선비중이
높은 중공업체일수록 혜택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부문은 수입부품의 가격상승외에 주력 수출지역인 동남아지역
화폐가치의 동반하락으로 더욱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한 중소기계업체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기술력 등의 문제로 동남아
국가에의 수출에 주력해왔는데 현지의 경기침체와 화폐가치 하락으로
수출길이 막혀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기계업계가 더욱 곤혹스러워하는 점은 기업의 설비투자 위축이다.

기계공업진흥회 양실장은 "기업들이 해외설비를 도입하며 국내 장비도
덩달아 끼워팔리는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환율상승으로 설비투자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도 이미 환율폭등이 단기적으론 2~3년간, 장기적으론 10년 이상
재계에 설비투자 위축을 가져올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플랜트분야의 수출은 더욱 절망적이다.

현대중공업 종합원가부 조성장부장은 "후진국에 플랜트를 수출하려면
한국이 자금조달을 해주는 BOT방식이 일반적인데 환율상승으로 파이낸싱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업계 전문가들은 고환율시대를 극복하는 대책으로 <>독자적인
기술자립 <>해외생산거점의 조기확보 <>무조건적인 설비증설경쟁과
해외차입 자제 등을 통해 기업의 경쟁체질을 강화하는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