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늦게 화의를 신청한 뉴코아그룹과 지난 7월 이미 부도가 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신공영은 처남-매부간 가족기업으로 장기불황을
벗어나지못하고 좌초하는 불운을 맞았다.

뉴코아 김의철 회장은 군복무시절 경리단 출납담당사병으로 당시군납업체인
한신보일러(한신공영의 전신)의 김형종 사장을 만난 인연으로 한신공영에
입사했다.

김회장은 이를 계기로 김사장의 맏딸과 결혼했다.

뉴코아 김회장이 지난 78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뉴코아를 설립, 한신공영과
외형적인 결별을 단행했지만 이후에도 김회장은 장인으로부터 지원을
계속받아왔다.

그러나 뉴코아가 고속성장을 거듭한 반면 한신공영은 창업주 김회장이
지난83년 작고하고 외아들인 김태형 회장체제가 출범한뒤 건설경기불황으로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되는등 어려운 행보를 계속했다.

특히 90년대 중반이후 또다시 몰아닥친 주택건설경기침체로 한신은 최악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뉴코아 김회장도 올초부터 자금난을 겪게돼 처남의
한신공영을 도울수 없어 지난 7월 한신공영의 최후를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한신공영이 쓰러진뒤 넉달도 못돼 뉴코아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화의신청을 냄으로써 처남-매부기업이 모두 넘어지는 비운을 맞게됐다.

재계에서는 뉴코아 김회장이 한신공영에서 일하며 배운 카리스마식
경영스타일로 고속성장을 이루기는 했으나 결국 건설업계 특유의 앞만보는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경영스타일로 좌초하고 말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 유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