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9일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과감한 자본자유화를 통해 현재의 난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채권시장을 앞당겨 개방하고 현금차관등 외화 유입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은 적극적인 개방을 통해 국내시장을 지키겠다는 맞불작전이라고 할수
있다.

외환 시장의 관계자들은 이날의 조치로 당장 30일의 원달러 시세는 상당한
안정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을 정도여서 정부의 전략적 접근이 돋보이고
있다.

특히 금융기관들의 현물-선물환 거래 한도를 완전히 풀어버린 것은 당장
외국계 은행으로 하여금 약 15억달러 내외의 달러를 공급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최근 한달여 동안 우리나라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들끓게 만들었던
외국인 주식 매도대금의 유출분을 상당히 상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자유화의 확대, 외환시장의 개방등 공격적인 대응은 자칫
우리나라 외환및 자본시장에서 국제투기세력의 영향력을 배가시키는 것인
만큼 장래의 외환 불안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부작용의 가능성도 높여 놓고
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전술이 있기는 하지만 자칫 과감한 개방물결을
타고 국제적인 투기가들을 비워둔 안방으로 불러들이는 우를 범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 내용중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역시 과감한 외자도입의
자유화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들이 발행한 무보증 회사채를 외국인들에게 개방한 것은 자본시장을
적어도 1년 이상 빨리 개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해외에 상장된 국내기업들의 증권이 급속히 인기를 잃어 가는 터에
과연 그들이 서울에까지 와서 다순한 금리차만을 노리고 채권을 사들여
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기업의 신용에 따라서는 회사채 소화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대기업들이 빠져 나가는 그만큼은 중소기업회사채의 추가
소화가 촉진되는 장점이 있다.

현금차관 도입을 외자 상환 용도로까지 확대한 것은 경기부진 등으로 침체
되어 있는 시설투자 등에 숨통을 터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 22억달러인 국산시설재 도입용 차관의 연간한도가 지금까지
절반밖에 소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의 외자 유입효과는 제한적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의 정부조치에는 독소조항들도 적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기관들의 외화매각 포지션을 오히려 줄여버린 것이나 거주자의 외화
매입을 원천 봉쇄해 버린 것은 외화관리를 70년대식으로 돌려 놓았다는
점에서 비난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외환사정이 다급하긴 하지만 무조건 달러를 못사게 하는 우악스런
관리방법이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을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하나 문제는 증권시장 대책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실질적인 자금지원을 기대했던 증권투자자들의 실망은 당장 주가에도 영향
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그런 점에서 이날의 대책은 주로 외환시장의 불길을 잡겠다는 것일 뿐
주가하락은 다음 문제라는 당국자들의 인식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