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조순총재는 시장경제원리를 중심으로 경제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만큼 경쟁을 특히 강조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주원인도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
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부건 기업이건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쟁력강화를 위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대통령"론을 내세우며 대선전에 뛰어든 조총재에게 경제전반에 대한
여러 의견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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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김형수 < 정치부장 > ]

-금융불안에 따른 자금난, 기업들의 잇단 부도사태와 주가하락 등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조총재께서는 "경제전문가"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며 대선에
뛰어들었는데, 현재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진단하시는지요.

"경제위기는 정치적 위기와 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치 난초와 같은 것이죠.뿌리는 썩어가고 있는데 잎은 파릇파릇하거든요.

우리 경제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뿌리가 썩고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중대한 약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위기라고 본다면 극복 방법이 있을 텐데요.

기업과 정부차원으로 나눠 설명해 주시죠.

"위기가 나타나고 있는 본질적인 요인은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미경상적자가 1백20억달러에 달하는 등 선진국에 대한 적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후진국에 대해서는 흑자를 보이고 있지만 얼마나 갈지 의문입니다.

국제경쟁력을 하루아침에 강화할 수는 없겠지만 난초를 키우듯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책추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임금과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또 정부역할도 규제를 통한 명령과 통제 일변도에서 개인이나 기업이
창의성을 발휘할수 있도록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경쟁분위기를 살려 나가는
방향으로 재조명돼야 합니다"

-조총재는 경제부총리 한국은행총재 등을 역임하실 때 다소 정책수행능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집권하시더라도 상황이 부총리 재직시절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들도 있는데.

"정부간섭은 위기관리라는 측면에서 극약처방이 돼야 합니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상황을 대체해선 안됩니다.

부총리 재직시절에는 임금과 물가가 오르고 광범위하게 토지투기가
일어나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된다면 위기관리 측면의 대처가 있어야겠죠"

-경제적 역할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대기업의 비중이 상당히 큰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리한 업종전문화 등 과거 대기업정책을 볼 때 과오도 있었다는
지적인데요.

"우리 대기업은 규모는 크지만 뚜렷한 정체성이 없습니다.

미국 AT&T나 크라이슬러를 보십시오.

기업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습니까.

우리 대기업은 규모만 클 뿐 개성이 없어요.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대기업그룹 안에서 새로운 기술혁신이 생길수
있겠습니까.

또 수많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매달려 있는 현실에서 경제전체적인
이노베이션(혁신)이 생길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대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까.

"이것도 한꺼번에 할 수는 없습니다.

개방을 확실히 하고 대기업을 누르려 하기보다 경쟁의 논리를 도입해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퇴출을 막으면 경제의 활력이 없어집니다.

퇴출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시장도 유연하게 할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부도유예협약 적용에서 보듯 정부개입이 오히려 부도를 부추긴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만약 조총리께서 집권하신다면 이 제도를 계속 존속시킬 생각입니까.

"시장경제원리를 액면 그대로 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부도유예협약으로 (기업을) 확실하게 회생시킬수 있다면 적용해야 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굳이 지속할 필요가 없겠죠.

미국경제가 무역및 재정 등 쌍둥이 적자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할수 있었던
것은 리스트럭처링이나 리엔지니어링 등을 통해 기업들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 여건상 그 정도로 심하게는 못하지만 기업 행정 교육 등 각
분야에서 경쟁원리 도입을 확대해 신진대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은총재 재직시 중앙은행 독립을 주장하다 정권과 마찰을 빚어 중도에
물러났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현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은법 개정 등 금융개혁 입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왜 정권말기에 한은법에 손을 댔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금융개혁은 간단한 것 같지만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임기말에 졸속으로 하기 보다는 다음 정권에 넘겨 충분한 토의를 거쳐
추진해야 합니다.

금융통화위원회를 개편해 한국은행에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부여한 것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은행감독원을 떼내 보험 증권감독원과 합쳐 대규모
감독기구를 만들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은행 보험 증권은 모두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감독기구도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금융산업의 경쟁체질 강화를 위해서는 은행에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요.

"은행에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있는 기업이 꼭 경영이 건실하다고 할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미국은 은행에 주인이 없어도 경제원리를 통해 운영하니까 잘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은행은 담보대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문제입니다.

근본적 원인은 정경유착인데 힘있는 사람이 유.무언의 압력을 통해 대출을
청탁하면 은행은 채권확보를 위해 담보를 필요로 하고 이에 따라 지가나
부동산가격이 상승하는 악순환을 빚고 있는 거죠.

금융업이 제대로 되려면 우선 신용대출을 할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재정경제원이 몸집이 너무 커 역효과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재경원 개편의사는 없습니까.

"재경원 기능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산실은 대통령 직속이나 총리실 산하로 보내고 금융부문은 중앙은행을
독립시켜 통화정책의 책임을 맡겨야 합니다.

통상이나 국제업무기능은 가칭 "통상대표부"로 흡수시켜야 겠죠"

-현정부는 인사문제에서 실정을 범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집권할 경우 인사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원칙을 견지할 계획이신지요.

"내각의 각료 재임기간을 최대한 보장할 생각입니다.

각료가 업무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며 그 계획을 장기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권한과 책임을 함께 부여해야 하며 직위에 맞지 않는 인물에게 논공행상으로
나눠주는 인사정책은 절대 펴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과 당파를 떠나 전문인력과 유능인력을 광범위하게 동원할 작정입니다"

-공기업 민영화가 결과적으로 자본력이 우세한 대기업들에만 혜택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민영화를 하는게 좋습니다만 민영화 자체가 능사는 아닙니다.

억지로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오히려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공기업의 형편,사업의 성격에 따라 선별해 시행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현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많은 정책시행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법인세를 크게 인하하고 중소기업이 신용만으로도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수 있는 제도확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벤처기업의 창업을 돕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규제완화 작업의 성과에 만족하십니까.

불만족이시라면 가장 시급히 완화해야 할 부분은 어느 곳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규제개혁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의식부터 고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뀌어도 담당공무원이 접수를 하지 않는다면
규제완화의 의미가 없습니다.

정부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권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무원은 규제의식을 버리고 "원 스톱 서비스"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근로자의 경우 자유직업 소득자보다 세율면에서 상대적으로 높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완할 용의는 없는지요.

"다음 정권의 중요 개혁과제중 하나가 세제개혁입니다.

근로자의 원천과세는 행정편의상 중요한 세원이 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근로자들이 높은 세금을 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유직업자들에 대해서도 정확한 세원 포착이 이뤄져 조세의 형평성이
제고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린벨트의 과도한 규제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또 토지이용도를 높인다는 차원에서도 그린벨트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그린벨트의 설정 목적은 환경의 보호입니다.

우선 그 목적을 충실히 추구해야 합니다.

대선을 위한 선심행정으로 그린벨트를 졸속 완화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단 부당하게 그린벨트에 의해 수십년간 재산상의 손해를 보는 주민들을
위해 적절한 보상조치나 보완조치를 취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린벨트 정책을 졸속 시행하다 보면 투기가 발생하고 대형 민원이 일어나
경제질서가 흔들릴 위험이 있습니다"

-최근 신한국당과의 연대의사를 밝히는 등 "반DJP연대"에 적극적이신데.

"경제가 어려워지는 원죄는 정치의 부패입니다.

낡고 부패한 3김정치시대를 청산하기 위해 건전한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세력들이 전향적으로 결집돼야 합니다.

이런 취지에 찬동하는 모두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내가 추진하려는 연대는 신한국당 민주당 국민회의 등 각 정당차원이
아니라 모두가 다시 태어나는 각오로 헤쳐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한국당 이회창총재와 만날 계획이 있습니까.

"이총재뿐 아니라 대선후보들이 모두 모여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총체적인
혼돈상에 대해 논의하고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정치지도자들은 "누가 이기느냐 지느냐" "합종연횡이 어떻느냐"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습니까.

대선후보들이 함께 우리가 처한 난국을 극복할수 있는 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언제쯤 "건전세력 연대"가 가시화되겠습니까.

"시기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11월초가 되면 각 정당이나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가닥을 잡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민주당과 내가 함께 일할 사람들이 가려질 것입니다"

< 정리 손상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