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법정관리는 대변혁의 서곡이다.

어떤 형태로든 분해되거나 새주인을 찾게 될 기아의 향방은 자칫 한국의
재계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파란을 몰고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변화의 격랑에서 재도약을 모색해 온 우리 자동차업계에 미치는
여파는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기아 법정관리이후 예상되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향방을 3회에 걸친
시리즈로 짚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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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를 산업은행이 끝까지 경영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모색하는게 도리다"(강경식 부총리)

"법정관리중이라도 기아자동차 인수희망자가 나서면 제3자 인수를 추진할
수 있다"(김영태 산업은행 총재)

재계의 기아차인수를 위한 불꽃경쟁의 본막이 올랐다.

기아자동차의 법정관리 목적은 궁극적으로 새주인을 찾아주자는데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이란 기아를 법정관리로 몰기 위한 "과장"에 지나지 않는다.

아시아자동차는 벌써 제3자 인수 방침이 확실히 잡혀 있다.

기아의 자동차 생산능력은 83만대, 아시아는 22만대.

국내 자동차 생산능력 4백14만대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규모다.

따라서 기아와 아시아의 "위치 이동"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것이다.

기아를 둘러싼 재계의 물밑 경쟁은 이제 수면 위로 떠올라 치열한 공방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이미 현대 삼성 대우 등 대기업 그룹들은 불안한 지분구조의 기아자동차
주식을 상당수 매집해놓은 상태다.

물론 주식매집의 목적이 "기아인수"였던 "기아보호"였던 매집 당사자들의
의도는 저마다 달랐겠지만 이제는 이들 기업이 기아인수전에 뛰어드는데
"종자돈"이 돼버렸다.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은 이미 기아자동차에 1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우그룹도 곧 주식으로 전환될 전환사채(CB)를 포함하면 5%가 넘는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산업은행이 대출금의 출자전환을 통해 확보하게 될 30% 가량의
지분이 앞으로 기아자동차의 향방을 결정하겠지만 그만큼 재계의 기아
인수전은 달궈질대로 달궈졌다는 얘기다.

사실 기아인수전은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 받으면서 이미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해왔었다.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기아그룹이 끝내
무너질 경우 "현대는 기아자동차", "대우는 아시아자동차"를 각각 나누어
인수하기로 밀약을 했다는 얘기도 정설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래선지 대우는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 발표가
나오자 곧바로 "아시아를 인수하겠다"(김태구 대우자동차 회장)는 선언을
했다.

김우중 회장도 이미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아시아가 매물로 나오면
인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터다.

그러나 아시아가 자동차업계의 지도를 바꿔놓을 정도는 아니다.

시선이 기아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대나 삼성 모두 기아를 놓고 사운을 건 일전을 벌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대우 역시 아시아에만 관심이 있을리가 없다.

기아자동차는 계열사들의 문제만 없다면 지금도 아주 괜찮은 회사다.

더욱이 자구계획에 의한 철저한 다이어트가 기아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
놓을게 분명하다.

기술도 좋다.

2000년 세계 10대 메이커를 겨냥하고 있는 현대나 대우, 기아 없이는
자동차사업은 물론 그룹의 운명도 책임질 수 없는 삼성 모두 단번에 1백만
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매출 10조원의 기아 인수는 현대와 삼성에게는 적어도 10년간은
"재계 1위"의 타이틀을 보장해 준다.

대우에게도 창업 30년만에 재계 1위의 영광을 안길 수도 있다.

재계 판도가 다시 짜여지는 셈이다.

사운을 건 기아인수전은 정치권의 대권경쟁처럼 아울러 어떠한 합종연횡의
돌발변수가 불거져 나오지, 지금으로선 섯불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