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세월이 빠르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하루가 지겹다"고 한다.

10대는 10마일로, 30대는 30마일로, 50대는 50마일로, 70대는 70마일의
속도로 시간의 속도가 느껴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간의 속도감각이 빨라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속 90마일의 과속에서 버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위에 90세까지 사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이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그러나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천년 후나 1시간은 60분이요, 하루는 24시간
이다.

또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은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고구마는 쪄 먹는 사람에게는 소비재요, 이를 심는 사람에게는 생산재다.

이처럼 어떤 사람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1초가 아깝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 중에는 공간을 축약해서 달리는 축지법의 지혜를 터득한 분들이
있다.

분명히 똑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남보다 빠르게 갈수 있단
말인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분명 시간도 이와같을 진대 집약해서 쓸수는 없는 것인가.

바로 그 노하우를 공개하고자 한다.

눈으로 보려면 눈을 떠야 한다.

인간의 눈으로 볼수 있는 시야는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안경 확대경 현미경 망원경 등 눈의 한계를 넘어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어느 한계점이 있게 마련이다.

자 눈으로 보려하지 말자.

눈을 감아보자.

거기에는 무한의 세계가 있다.

안 보이는 것이 없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멀리보기 위해 높이 날았지만 오르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는 이차원적 이야기다.

눈을 감으면 다보이는 것을 어찌 높이만 날으려 하는가.

시간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을 잡으려하지 말라.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다.

시간을 타라.

그리고 핸들을 돌려보아라.

과거라는 시간속으로 가고 싶으면 과거로, 미래라는 시간속으로 가려면
미래로, 지금이 좋으면 여기에 머물러라.

시간이라는 실체나 공간이라는 실체 모두 당신 마음속에 쉬고 있다.

두드려라.

시간의 문도, 공간의 문도, 마음의 문도, 이미 열려 있는 문이다.

< 창조성개발학회 이사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