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아사태가 미결인채 남아있는 상태에서 비자금 정국으로 인해 정치.경제적
불안이 높아지면서 "어느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기업들은 돈가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자동차.섬유 등 특정업종을 넘어 컴퓨터업종
에까지 부도의 불똥이 튀는 등 부도도미노 공포가 전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특히 최근들어서는 해태 등 비교적 건실한 경영을
해왔던 중견대기업들까지 경영위기를 맞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또 다시
"부도리스트"가 나도는 등 연쇄부도에 이은 금융대란마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폭발한 비자금 정국이 장기화
되면서 그 불똥이 언제 다시 재계로 튀질 모른다는 불안감이 업계를 위축
시키고 있다.

기아사태 장기화로 우리 경제의 한축을 담당했던 자동차업계 전체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무엇보다 협력업체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이
원천봉쇄 당하고 있는데다 일감마저 줄어드는 등 업계는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쌍방울그룹이 무너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사양산업으로 몰려 위축돼 가고
있는 중소 섬유업체들이 극심한 자금난으로 연쇄부도의 위협속에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있으며 특히 이들 섬유업체와 아시아자동차 협력업체가 밀집해
있는 호남지역 경제는 파탄지경에까지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각종 구조적인 문제로 수출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고 최근
일련의 부도사태로 대외신용도가 떨어지면서 해외로부터의 차입조차 막히고
있어 재계로서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있는 형국이다.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5단체 대표들은 이같은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13일과 14일 고건 국무총리와 이한동 신한국당 대표를 잇따라 만나
신한국당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비자금 폭로과정에서 기업 명단까지
공개한 것에 대해 섭섭함을 표하고 집권당으로서 어려운 경제상황 해결에
주력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난국에도 불구, 정부는 "경제문제는 자유시장 경쟁원칙으로
찾아야 하는 만큼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해법이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는 형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은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며
정부도 기업과 금융기관 부실화 문제를 투명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특히 정치권의 외풍에 의해 경제문제가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기아사태등으로 경제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것과 관련,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대기업들의 부도사태가 계속될 경우 대기업부도는
경제성장률을 0.3%포인트 감소시키는 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신후식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내년에 대기업부도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고 부실기업의 처리가 신속히 이뤄진다면 국내경제는 올해(6%)와 비슷한
성장(6.2%)을 하겠지만 추가부도가 발생할 경우 경제성장률은 5.9%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주가는 10%, 원화가치는 3%정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신위원은
진단했다.

< 노혜령.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