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간 거래분쟁이 급증하는 추세다.

납품대금을 "내놔라"는 측과 "못주겠다"는 측의 몸싸움이 갈수록 팽팽하다.

지난 5월초 공조기기부품업체인 테크오토는 세원물산기업으로부터 컨트롤러
를 주문받았다.

납기일 7월1일을 엄수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그런데 핵심부품조달이 늦어지는 바람에 테크오토는 이틀 늦게 납품을
하고 말았다.

이것이 화근이 됐다.

컨트롤러를 납품받은 세원측이 2개월이 지나도록 납품대금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장 현금을 주지 못하면 어음이라도 끊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세원측은 납품받은 컨트롤러의 고장이 잦다면서 컨트롤러를 도로
가져 가라며 엄포를 놓았다.

테크오토 김택성 전무는 "세원측이 이미 컨트롤러를 완제품에 장착했으면서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
신고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업간의 분쟁이 이제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간다.

더욱이 그동안의 기업간 거래분쟁은 품질이나 단가에 관한 것이 많았으나
요즘은 한결같이 돈문제다.

모두가 납품대금을 놓고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있다.

특히 기아사태이후 원사업자측이 대금지급을 더욱 지연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발단이 되고 있다.

또 지금까지는 거래분쟁의 대부분이 중소기업과 모기업간의 분쟁이었으나
올들어선 중소기업간의 분쟁도 더욱 늘어나는 추세.

올들어서 대금분쟁으로 분쟁조정협의회에 신고하거나 법원에 제소한 경우는
이미 4백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초 동백엔지니어링은 삼광수기가 어음할인료 1천만원을 주지 않자
분쟁을 벌였다.

그러자 삼광수기측이 납기지연을 이유로 들어 지체보상을 요구했다.

다행히 양측은 어음할인료와 지체금을 상계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화인상사는 로얄레포츠가 납품대금 1천4백만원을 주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로얄측이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금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공정거래위에 신고했다.

정우기업은 지난 4월 서울차체공업이 자동차부품 정산대금과 금형비용을
주지 않자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 조정신청을 했다.

덕분에 대금및 금형비용 2천8백만원을 받아냈다.

서울차체공업은 9월초 기아사태여파로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밖에 선진물산과 신흥기계, 천마시스템과 한국보일러, 성광기공과
신광기업 등은 추가공사대금을 놓고 분쟁을 벌이다 합의를 봤다.

업계는 올들어 대금분쟁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자금사정 악화로 자기의
자금사정을 다른 기업에 전가하는 경향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
한다.

요즘들어선 대금을 주는 대신 자사의 제품을 주는 사례도 늘어나는 형편
이다.

유리대리점을 통해 복층유리를 생산해 공급했더니 대금으로 판유리를 받은
업체들도 있다.

전자제품업체에 인쇄회로기판등 부품을 납품하자 자사완제품을 사줄 것을
요구받았다고 불평하는 기업인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원사업자에 대해 항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납품권 박탈등 보복이 두려워서다.

업계는 이같은 보복에 대해서 단호히 처벌해줄 것을 바란다.

이러한 갈등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간 거래제도를 현실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일단 기업간의 현금결제가 상관습화될 때까지 장기어음발행을
정부가 강력히 규제토록 해줄 것을 요청한다.

제도를 바꿀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제도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물론 제도를 잘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땐 서로가 한발씩 양보해 합의를 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