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된 수표인지 모르고 이를 할인해준 경우 수표를 소지한 사람이 입은
손해액은 수표를 할인해준 금액일까, 아니면 수표 액면가일까.

중소기업의 경리사원으로 근무하던 진모씨는 지난 92년 11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김모씨로부터 사업자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진씨는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수표용지와 대표이사의 인장을 사용해 임의로
지급일자를 3개월뒤인 93년 2월로 하는 액면금 1천만원과 5백만원짜리의
회사발행 당좌수표를 작성한뒤 이를 김씨에게 주었다.

김씨는 이틀뒤 사채업자인 최모씨에게 이 수표의 할인을 의뢰했고 최씨는
지급은행에 회사의 신용상태를 문의한뒤 월3푼의 이자율에 의한 3개월분
선이자를 뺀 1천3백50만원을 김씨에게 지급했다.

은행직원으로부터 회사가 우량기업이고 예금잔고도 항상 많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이다.

최씨는 그러나 지급기일인 3개월 뒤 은행에 수표를 제시하고 수표액면금을
지급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사고수표라는 이유로 지급거절당했다.

뒤늦게 위조수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최씨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했다.

최씨는 과연 얼마나 돌려받을수 있을까.

법원은 최씨가 입은 손해액은 수표액면금이 아닌 할인지급액 1천3백50만원
이라고 판시한 뒤 최씨가 위조수표인지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과실책임까지
인정해 "회사는 최씨에게 9백55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표액면금은 수표가 위조된 것이 계기가 돼 수표
소지인이 얻을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는 가상의 이익일뿐 실제로
발생한 이익은 아니다"고 밝혔다.

김씨가 요구한 수표액면금은 수표가 위조돼지 않은 경우를 전제로 성립하는
것으로 수표위조와 수표액면금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

따라서 위조 수표를 할인이라는 방법을 통해 취득한 사람이 입게 되는
손해액은 위조수표를 받기 위해 현실적으로 지급한 할인금이지 수표의 소지인
이 지급받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수표의 액면금액은 아니다는게 법원의 판단
이었다.

법원은 이어 최씨가 수표를 할인하면서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 30%도
함께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량기업이 지급증권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수표를 선일자로
발행하고 그 수표소지인이 이를 할인의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인데도
김씨가 단순히 지급은행에만 이를 확인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최씨가 피고회사에 직접 사건수표들의 발행여부를 직접 확인했더라면 수표가
위조된 사실을 쉽게 알수 있었는데도 고리의 선이자만을 노리고 사건수표를
취득한 과실책임 30%를 물린 것이다.

결국 최씨는 수표액면금 1천5백만원대신 할인금액 1천3백50만원의 70%인
9백55만원만 돌려받게 됐다.

<이심기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