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요즘 죽을 쑤고 있는건 비단 기업부도 때문만이 아니다.

본연의 업무인 예금장서에서도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근원은 다름아닌 금리전쟁.

부도시리즈에 파묻혀 크게 부각되고 있지 않지만 은행들은 현재 격렬한
금리전쟁을 벌이고 있다.

과거와 같은 금리카르텔은 이제 생각도 할수 없다.

1일부터 판매된 근로자우대저축을 보자.

조흥 상업 등 선발은행들은 연11.5%, 신한 한미 등 후발은행들은 연12.0%를
책정했다.

일단 여기까지는 작년 10월 비과세 가계저축이 나왔을 때와 다를바 없다.

그러나 올해엔 일부은행이 과감히 치고 나왔다.

서울은행이 연11.8%로 차별화를 꾀했고 보람은행은 연12.1% 제일 동화은행은
보너스금리로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식 예금)은 어떤가.

4단계가 금리자유화가 단행되면서 은행들이 7월부터 판매하고 있는 MMDA는
그간의 은행금리 관행을 뒤집어 엎는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왔다.

은행들은 금리자유화의 대상이 됐던 자유저축 저축 기업자유예금 등에 그간
연2~3%의 금리를 주며 이익을 챙겨왔다.

그러나 금리규제가 풀리자 종전 예금잔액이 적었던 후발은행들이 보란듯이
연11%수준의 고금리를 들고 나왔다.

금액별 금리차등이 있긴 했지만 무려 9%포인트 가까이 금리를 인상한
것이다.

약발은 금방 나타났다.

하나은행의 경우 판매 이틀만에 1천5백억원을 끌어들였다.

은행전환 6년동안 모아들인 자유저축.저축.기업자유예금의 잔고가 3천억원
을 조금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마디로 용틀임한 셈이다.

자금은 종금 등 제2금융권에서도 왔꼬 선발은행에서도 빠져나왔다.

적게는 2조5천억원 많게는 7조원의 잔고를 갖고 있던 선발은행들의 속앓이가
시작됐다.

MMDA를 판매하자니 수지악화가 눈에 보이고 팔지 않자니 자금이 이탈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결국 선택은 판매 쪽이었다.

너도나도 연10% 연11%의 금리를 주겠다며 금리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그런일이 시작된지 2개월여가 흐른 지금, 선발은행들의 수지 악화는
현실로 다가왔다.

올해 2천6백억원의 순이익달성을 장담하던 국민은행은 2천억원이내로
이익목표 축소했다.

내년 예산도 올해보다 1천억원 삭감할 것이라고 한다.

급기야 다른 선발은행들도 수지보전책을 내놨다.

상업은행을 필두로 한일 국민은행이 대출우대금리를 올렸다.

조흥은행이 여신관련 수수료를 인상했고 제일 상업 신한은행 등은 수출
환가요율을 상향 조정했다.

인상할 만한 상황이 생기면 인상하는게 순리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우리 은행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무소신 모방경영이 은행들에 직격탄을
안겨준 것이다.

남들이 하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따라가겠다는 무소신, 비슷한 상품밖에
팔줄 모르는 모방경영.

사실 미국의 MMDA는 최저잔액과 인출횟수에 제한을 두고 이에 맞지 않으면
수수료를 부과하는 상품인데 국내은행들은 고객이탈 방지에만 초점을 뒀을뿐
철저한 손익계산은 뒷전이었다.

은행들의 이같은 경영결과는 결국 고객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고객들은 금리를 더 물어야하고 수수료를 추가 부담케됐다.

이쯤이면 금융중개비용을 낮춰 연5%의 저금리를 만들어달라는 재계의
목소리는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대출로 터지고 예금장사에서 깨지는 은행들.

스스로의 경영행태가 가장 낙후된 수준은 아닌지 자문해 볼이다.

<이성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