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대정읍 일관리.

모슬포에서 가까운 이 마을엔 검은 제주돌을 돔형으로 쌓아 만든 별장을
연상케하는 건물이 하나 있다.

가까이 가보면 이 건물은 별장이 아니라 공장이다.

회사이름은 봅데강.

봅데강이란 제주말로 "보셨나요"란 뜻.

이 업체는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제품을 만든다.

주요생산품은 풋감으로 물들인 제주갈옷.

이 옷을 패션화해서 팔았다.

창업자는 김은희씨(47).

가녀린 손가락으로 기타를 치며 "꽃반지 끼고"를 노래하던 가수 은희가
바로 그녀다.

이 업체가 입주해 있는 곳은 농공단지.

덕분에 봅데강은 시설자금 4억원과 운전자금 2억원등 총6억원의 농공자금을
지원받아 출발했다.

김은희씨는 그 가냘픈 몸으로 지역특산품을 상품화하는 데 정말 피땀을
쏟았다.

그러나 이런 피땀과 자금지원 혜택에도 불구, 봅데강은 얼마전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 회사의 부도를 보면서 일부에선 "어떻게 그렇게 많은 농공자금을
지원받고서도 부도를 냈을까"라고 의아해한다.

그러면서 농공단지 지원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학계및 국회에서 농공단지조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 주장도 일리는 있다.

현재 입주기업중 총 4백70개업체가 휴폐업중이어서다.

현재 전국의 농공단지는 모두 2백86개.

입주기업은 총 3천52개사에 이른다.

이들 입주기업중 전체의 15%이상이 문을 닫은 상태다.

이를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한달동안 전남 강원 경북등에 흩어져있는
농공단지 다섯곳을 둘러봤다.

입주업체중엔 부도로 사장이 도망가버린 업체가 많았다.

이미 공장지붕까지 허물어져 비가 새는 곳도 있었다.

이를 보면서 농공단지 정책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긴 했다.

그럼에도 농공단지조성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휴폐업체가 수두룩한 건 사실이지만 그보단 농공단지의 기여도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먼저 전국 농공단지 입주업체들의 매출액 추이를 보자.

지난 94년 농공단지의 총매출은 8조원대였다.

이것이 95년엔 9조8천억원으로 늘었으며 지난해엔 1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적어도 1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3천여개의 개미군단이 제주갈옷을 팔거나 반디볼펜 전자부품등 전문품목을
팔아 11조원이란 정말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린 것이다.

여기에다 농공단지는 시골의 유휴노동력을 생산현장으로 끌어들이는데도
이바지했고 지역간 균형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수도권인구집중을 막는데도 상당히 도움을 줬다.

이정도만으로도 농공단지가 국민경제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농공단지 입주업체들에 대해 더욱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그럼에도 내년도 예산에서 농공단지 지원부문은 대폭 깎이고 말았다.

올해 지원액이 1천4백90억원인데 내년엔 9백억원대로 삭감됐다.

국회측에서 예산을 깎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농공단지를 활성화하는 것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얼마나 큰 실적을
안겨주는 것인가를.

따라서 국회에서 농공단지 예산을 깎는 것은 스스로의 발을 묶는 처사다.

최근 봅데강은 주식회사 우리란 상호로 재출발을 했다.

이런 특화업체가 살아남아야 지역경제가 발전하지 않을까.

자, 농공단지를 한번 가봅데강.

직접 가보면 생각이 금방 달라질 거우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