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기아그룹에 대해 사실상 법정관리를 결정함에 따라 은행과 종금사
등 금융기관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됐다.

은행들의 경우 기아의 법정관리로 인한 대손충당금 추가적립부담이
3조여원에 달해 연말결산에서 무더기 적자가 불가피해졌다.

지난 6월말 4조9천7백13억원인 부실여신(회수의문+추정손실)도 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기아그룹에 3조9천억여원(5월말기준)을 빌려주고 있는 종금사들도 이자
상환중단으로 유동성은 물론 수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만일 기아그룹의 법정관리가 장기화된다면 일부 종금사는 물론 일부 은행들
도 위험한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 은행 =당장 올 연말 결산부터가 문제다.

은행감독원은 화의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체에 대한 여신을 모두
고정여신과 회수의문으로 분류, 거기에 걸맞는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하고
있다.

담보가 있는 여신은 "고정"으로 분류돼 여신액의 20%를,담보가 없는 신용
여신은 "회수의문"으로 간주돼 75%를 각각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지난 7월말 현재 은행들의 기아그룹에 대한 여신은 5조7백61억원.

이중 1조8천1백81억원에 대해서만 담보를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담보부족여신 3조2천5백80억원에 대해선 75%인 2조4천4백35억원의
충당금을 새로 적립해야 한다.

또 담보여신 1조8천1백81억원의 20%인 3천6백36억원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기아의 법정관리로 은행들이 추가 적립해야 하는 충당금은 무려
2조8천71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는 지난 상반기 25개 일반은행의 업무이익 2조2천6백42억원보다도 5천억원
이상 많은 규모다.

은행들은 업무이익에서 대손충당금 등 각종 충당금을 적립한뒤 당기순이익을
낸다.

지난해 25개일반은행의 당기순이익이 8천4백68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 은행들의 무더기 적자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화의를 신청한 진로그룹에 대한 충당금부담과 대기업의 잇단 부도로
인한 미수이자까지 감안하면 적자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론 국민 신한 하나등 일부 은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은행이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은행들의 충당금부담이 완화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했다 해도 프라임레이트(연 8.5%)이상의 이자를
받으면 요주의여신(충당금비율 여신액의 1%)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화의가 개시돼 이자가 지급되면 몰라도 법정관리가 시작되면 이자를
받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일부은행이 끝까지 "조건부 화의"에 동의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이유
에서다.

특히 기아의 법정관리가 장기화되면 은행들은 내년부터 연간 6천억여원의
이자를 받지 못하게돼 두고두고 수지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 종합금융사 =종금업계는 기아에 대출한 3조9천5백억원이 장기간
묶이면서 유동성 위기가 몰아닥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아에 대한 여신만 종금사 자기자본(3조9천7백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부실채권이 자기자본을 잠식하는 종금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신용도 타격으로 예금이 빠질 경우 종금사의 자금회수가 가속화
된다는데 있다.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종금사의 외화사정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종금사는 정부가 이같은 유동성 위기에 적극 대처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1조원의 한은특융이 종금업계의 조건부수용 입장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수지악화로 인한 무더기 적자도 불보듯 뻔한 일이다.

법정관리 정리계획이 나올때까지 이자를 못받을 뿐아니라 나중에 받더라도
조달금리보다 6%포인트 이상 낮은 법정금리로 받게돼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
하다.

종금사는 은행과 CP의 이면보증 효력을 둘러싸고 사상 최대규모의 집단
법정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종금사는 1조원정도의 기아 CP를 은행신탁에 팔면서 이면보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법정관리가 되더라도 지급보증의무는 이행해야 된다는데 있다.

종금사는 이에대해 "은행은 신용평가능력이 있는 만큼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법정소송도 불사할 방침이다.

어쨌든 전국 30개 종금사가 지금처럼 영업을 계속해 나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수합병이나 정리를 통해 대형화 또는 전문화라는 두갈래 길을 걷게 될
전망이다.

< 하영춘.오광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