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융단이 사실상 기아그룹 전체의 법정관리를 결정한 것은 기아자동차
의 정상화를 위해선 법정관리가 낫다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기아그룹과
김선홍회장에게 더 이상 끌려갈수 없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한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김회장의 사퇴를 전제로 화의에 동의해 준다해도 기아자동차가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그동안의 행태로 미뤄 김회장이 경영권을 쉽게 포기
하리라는 장담도 할수 없다는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그럴바에 차라리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과 금융기관이 입을 피해가 크긴
하지만 법정관리를 택하는게 보다 확실한 방법이라고 채권단은 판단한
셈이다.

이에따라 이제 기아운명의 결정권은 다시 기아에 넘어갔다.

채권단의 판단을 받아들여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채권단의 추가자금지원
으로 정상화의 길을 모색할수 있다.

반면 화의를 고수한다면 채권단의 지원없이 자체적으로 생존을 꾀해야만
한다.

그러나 외부자금지원없이는 기아자동차는 물론 아시아자동차의 정상화도
힘들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즉 기아가 화의고수를 결정한다해도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에 불과할뿐
결국엔 부도후 법정관리라는 수순을 다시 밟게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아가 법정관리를 선택하든,화의고수를 선택하든 시기의 문제일뿐
기아는 정부의 의도대로 "부도후 법정관리"라는 길을 걸을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기아 스스로 채권단이 통보한 오는 10월6일이전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이라고 기대할수는 없다.

어차피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바에야 현 경영체제를 당분간 유지할수 있는
화의고수를 선택하는게 낫다는 판단도 할수 있어서다.

더욱이 화의개시여부가 결정될 때까지는 약 3개월이 걸리는 만큼 이 기간
동안 대통령선거등 상황이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할수도 있다.

기아가 어떤 선택을 하든 기아에 대한 사실상 법정관리결정이 몰고올 파장
은 크다.

당장 기아자동차 노조의 문제다.

기아노조는 이날 채권단의 결정은 제3자인수를 추진하려는 속셈이어서
받아들일수 없다며 오는 29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아노조 움직임에 경영진이 가세할 경우 기아사태는 대선을 앞두고 엄청난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협력업체의 연쇄도산등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도 관건이다.

6천여개의 협력업체가 줄줄이 연쇄부도를 내게되면 자칫 국가경제 전체가
마비상태에 빠질수도 있다.

또 기아자동차의 해외사업차질과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 추락에 따른
국가신인도의 저해도 우려된다.

은행과 종금사들까지도 자칫 위험한 상태로 내몰릴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기아가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5조여원의 은행여신 대부분이 회수의문으로
분류돼 은행들은 75%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그러면 제일은행은 물론 조흥 상업 한일은행등도 연말에 무더기 적자를
내게 된다.

일부 종금사들은 4조여원의 여신이 묶이면 당장 존폐의 기로에 내몰리게
된다.

이와함께 기아자동차의 제3자인수를 둘러싼 "음모시비"도 표면화될 공산이
크다.

법정관리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조속한 제3자인수가 필요하고
그러자면 특혜시비가 일것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아사태는 채권단의 사실상 법정관리결정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매듭
된게 아니라 이제부터 새로 시작된 것으로 볼수 있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