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제철이 23일 현대그룹의 제철업 참여와 관련, 홍보담당 중역의 입을
통해 "반대는 않겠다"라는 소극적인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저간의 사정에
비추어보면 그 표현 이상의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정부가 현대의 제철사업 진출을 가로막아온 논리가 공급과잉전망
이었고 그 전망이라는게 주로 포철이 작성한 철강장기수급전망에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포철은 간접적으로 현대의 제철사업 진출을 불허하는 논리를 제공해온
셈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역할을 않겠다는 뜻을 윤상무의 발언을 통해 밝힌
것이다.

그러면 포철은 왜 이렇게 입장을 선회할 것일까.

윤상무는 대규모 투자의 결정과 위험부담은 해당기업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가지 배경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은 정부측 철강수급전망이 빗나갔다는 점이다.

통상산업부는 작년말 신산업발전 민간협의회에서 올해 철강수요량을
4천5백만t으로 예측했으나 실제 철강수요는 작년에만도 4천9백만t에
달해 통산부 전망을 훨씬 웃돌았다.

또 2000년의 철강수요도 통산부는 5천1백70만t으로 예측했으나 최근
민간연구소에서 나온 전망치는 철강협회가 5천3백50만t, 전경련이
6천1백59만t 등으로 통산부 예상치보다 훨씬 많았다.

여기에다 포철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는 한보철강의 잠재적 인수
가능사로 현대가 지목되고 있는 점도 포철 입장변화의 한 요인이 될수
있다는 분석.

포철은 마음에도 없는 한보철강의 인수부담을 덜기위해 자산인수방식을
제안해 놓고 있다.

그러나 57개 관련 금융기관의 입장이 서로 달라 이 또한 쉽지 않은 상황
이다.

따라서 포철로서는 제3의 인수기업으로 유력시되는 현대에 한보철강을
떠맡기려면 현대의 숙원사업인 고로제철사업 진출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현대의 제철사업에 대한 정부내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타나고 있어 윤상무의 이날 발언과 함께 현대측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때마침 현대측의 움직임도 부쩍 활발해진 것도 주목받는 부분이다.

현대는 한동안 제철사업 진출문제에 대해 별다른 움직임을 안보여
왔는데 지난 11일 코리아서밋행사에서 정몽구 회장이 제철사업 재추진의사를
밝혀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정회장은 뒤이어 제철사업 핵심임원들을 이끌고 독일의 티센제철소를
방문, 제철사업에 대한 구상을 본격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정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의 숙원사업 성취가
임박한게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