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화의신청에 대해 청와대는 채권금융단이 결정할 사항이라고 강조
하면서도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기아가 정부및 채권단에 한마디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화의신청을
한데 대한 불쾌한 감정이 작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화의제도 자체가 갖는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는 더 크다.

김인호 경제수석은 "채권 채무관계가 복잡하고 기업규모가 큰 경우 화의
제도는 적합하지 않다"며 "화의제도를 기아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아의 경우 채권기관이 1백43개나 되는데 채권단의 동의를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동의를 받는다고 해도 중간에 담보를 가진 금융기관이 담보권을
행사하면 화의제도는 그대로 깨지는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담보를 갖고 있지 않은 금융기관은 그대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돼 종금사등 제2금융권에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나 채권단에서는 처음부터 화의제도는 전혀 고려해 보지
않았다는게 청와대관계자들의 얘기다.

김수석도 23일 "이제까지 정부와 채권단에서 화의제도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기아가 일방적으로 화의제도를 들고 나왔다"고 마뜩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김수석은 "기아와 채권단과의 의견교환과정에서 기아자동차만은 살리고
아시아자동차, 기산, 기아특수강 등은 정리해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었다"며
"기아자동차에 대한 채무와 보증채무를 유예해 줘야 기아자동차가 산다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수석은 "기아가 금융기관에 대해 채무유예를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말까지 했었다"고 밝히고 "설득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화의신청을 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기아사태에 대한 최선의 방법은 기아가 채권금융기관들을 설득, 기아자동차
에 대한 채무와 보증채무를 일정기간 유예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러한 노력을
기아 스스로 포기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김수석은 그러면서 "법정관리가 기업을 살리는게 주목적인 반면 화의제도는
기업주를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강조, 정부입장에서는 기업주
보다는 기업을 살리는 더 관심이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최종적인 결정은 채권금융단에서 내릴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 최완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