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22일 퇴직(기업)연금 취급기관을 보험뿐 아니라 은행투자신탁 등
전 금융기관으로 확대키로 함에 따라 연간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퇴직연금시장을 놓고 이들 금융기관간 한판승부가 불가피해졌다.

퇴직연금은 현재 일시불로 지급되는 퇴직금을 종신연금 형태로도 받을수
있게 한 것으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세제혜택
까지 주면서 시행하고 있다.

내년 3월께부터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이 도입되면 현재 생명보험
사만이 취급하고 있는 종업원 퇴직적립보험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종퇴보험의 시장규모는 지난 7월말 현재 8조2천여억원에 달하고 있어 퇴직
연금은 판매 첫해인 내년에만 시장규모가 2조~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
각 금융권간 시장쟁탈전이 뜨겁게 벌어질 전망이다.

더욱이 퇴직연금시장은 경제성장에 따른 기업규모 확대와 창업 증가 등으로
앞으로 계속적인 신장세가 예상돼 앞으로 이 시장을 어느 금융기관이 주도
하느냐에 따라 금융권 전체의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금융계의
판단이다.

보험사만으로 제한돼왔던 퇴직연금 취급기관을 확대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은행과 투신등은 노동부의 이날 결정에 대해 "당연한 조치"라고
반기면서 연금 판매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은행 등은 이미 오는 99년부터는 종퇴보험을 취급할수 있도록 돼 있어 이번
결정을 통해 보험사의 양대 영업기반중의 하나인 단체보험을 상당부분 잠식
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보험사들은 퇴직연금은 보험사 고유상품임을 강조하면서 23일 노동부와
재정경제원 등 관련부처에 계획 취소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전달하고 앞으로
국회 등에서 입법 반대활동을 벌이기로 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생보사들은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처럼 종신 지급되는 퇴직연금을
은행과 투신에 허용하게 되면 5년이나 10년 만기같은 "단기 근로자저축"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 도입취지가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생보협회 한 관계자는 "미국등의 경우 은행은 퇴직연금의 자산운용부분만을
취급하고 있으며 퇴직근로자가 종신지급을 원할 경우 보험사로부터 연금
상품을 구입해주고 있다"며 "은행과 투신 등에게는 자산운용기능만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부의 이날 결정은 금융기관간 업무영역 조정문제와 직결돼 있는데도
재경원과의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나왔다는 점에서 오는 25일 입법예고
이후 정책협의과정과 입법과정에서 논란을 일으킬 소지를 남겨놓고 있다.

또 노동부 결정대로 연금취급기관이 확대되더라도 취급 금융기관이
농.수.축협 등으로까지 전면 확대될지 여부는 불투명해 근로기준법 개정이후
에도 "대통령이 정하는 저축"의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 문희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