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보다 구멍가게가 좋은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외상으로 물건을
살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든 동네사람들을 알고 있던 구멍가게 아저씨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외상을 잘도 주었다.

편의점이나 할인점 등과 같은 새로운 유통업태들에 밀려 구멍가게들이
하나 둘씩 없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애석하게 생각한 것은
이처럼 훈훈한 정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애석해할 필요가 없다.

외상판매업 또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업이라는 현대판 구멍가게가 등장한
까닭이다.

이곳은 아기곰인형에서 냄비와 프라이팬, 후추병세트에 이르는 모든 가정
생활용품을 할부판매하고 있다.

이 사업이 외상판매업 또는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업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우선 할부기간이 1년이상으로 길고 고객의 대부분이 저소득층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는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톤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핑거헛사이다.

이 회사는 소비자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엄청난 양의 제품을 외상판매함
으로써 급성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자그마치 19억달러의 매출실적과 4천7백만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 회사는 생활용품은 물론 가전제품 보석 의류 등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카탈로그 텔레마케팅 홈쇼핑TV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핑거헛사의 가장 큰 특징은 현금지불능력이 없는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장기할부판매를 한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40달러짜리 운동화를 13개월 할부로 파는 식이다.

물론 할부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는 추가된다.

외상장사인데 떼일 염려는 없을까.

물론 이런 의심을 할수도 있지만 이 회사는 대금회수와 관련된 리스크를
최대한 줄일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5천만명이 넘는 소비자를 상대로 개인당 5백개 항목이상의 정보가 수록된
데이터베이스가 안전판이다.

데이터베이스에는 소비자의 이름과 주소 연령 가계수입 결혼여부 자녀수
마지막구매일 대금지불상태 전화판매 수락여부 등과 같은 상세한 소비자
정보가 수록돼 있다.

핑거헛사는 이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 저소득층 소비자 가운데 신용도가
높은 노른자위만 골라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또 개인별로 구매욕구가 가장 높은 시점에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제품이
실린 카탈로그를 제작, 우송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문제는 외상을
주는곳 자체가 많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시장에 외상판매업이 정착하기에는 난관이 적지 않다.

우선 개인신용정보와 관련된 정보인프라의 정비가 미흡하다.

또 관련법규도 미비한 상태이다.

그러나 외상판매업은 정보화사회로의 진전과 더불어 꿈틀대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잠재시장이라는 것은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 (02) 557-2141

유재수 < 한국벤처창업정보원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