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속에 맞는 추석연휴는 직장인들에겐 그리 풍요롭지 않다.

예전같으면 고향에 체면치레는 할 수 있을 정도의 보너스가 있었지만
올해는 월급만 제대로 나와도 다행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도를 냈거나 경영위기에 몰린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연휴 기간 동안 만날 친척들의 한숨이 오히려 걱정이다.

총수들의 추석연휴 계획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예년과는 자못 다르다.

해외 사업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을 위로하며 보내는 회장들이 적지 않고
연휴기간 동안 내년 사업계획의 대강을 결정짓기 위해 서재에 틀어박히기로
작정한 총수들도 많이 눈에 띈다.

최근 독일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참관을 마친 삼성 이건희 회장은
19일까지 헝가리에 머물며 "동구권 사장단회의"을 주재한다.

이후에도 카자흐스탄에 들러 삼성전자 현지 사업장을 둘러보고 22일께
귀국할 예정.

매년 해외주재원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해외에서 명절을 보내온 대우
김우중 회장은 올해도 예외없이 국제선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한 행선지는 정하지 않은 상태.

폐암수술 후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는 최종현 전경련회장(선경그룹회장)은
현지에서 미주 경영기획실 임직원들을 격려한 뒤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보낸다.

가능하면 연휴 직후 가족들과 함께 귀국하는 일정을 잡고 있다고.

정몽원 한라회장은 13일 출국해 말레이시아에서 현지 근로자들과 함께
추석을 보낼 예정.

정회장은 작년까지 해외에서 명절을 보내온 정인영 명예회장의 전통을
이어가는 셈.

대신 정명예회장은 이번에는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계획이라고.

국내에 머무는 총수들의 경우도 4일이나 되는 추석연휴 대부분을 4.4분기
사업계획을 재점검하고 내년 사업계획의 대강을 다듬는데 쓸 계획.

현대 정몽구 회장은 중추절 당일인 16일 청운동에 있는 정주영
명예회장 집에서 차례를 지내며 정명예회장에게 제철사업 진출 방안 등
그룹 경영전반에 대해 조언을 구할 예정.

나머지 날들은 한남동 자택에서 내년 사업구상에 전념한다고.

구본무 LG회장은 성북동 구자경 명예회장 자택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
외에는 한남동 자택에서 연휴를 보낸다.

구회장은 그룹의 중기 슬로건인 "도약 2005"의 강도높은 실천방안을
구상할 듯.

김석준 쌍용회장은 강원도 횡계에 있는 선영에 성묘하고 용평리조트에
머물며 자동차사업 정상화방안에 대해 연구할 예정.

김승연 한화회장도 충남 공주에 있는 선영을 찾아 성묘하고 연휴 중에는
종로구 가회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할 계획.

매년 고향을 찾는 박정구 금호,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은 올해도 각각
광주와 강원도 동해에서 연휴를 보낼 예정이다.

이밖에 대부분의 그룹총수들이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자택에서
조용히 경영구상에만 전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위기의 바닥이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총수들이 내놓을 "추석 구상"이
기대된다.

< 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3일자).